일탈의 대가

사소한 일탈에 그렇지 못한 대가

by 흔한직장인


애주가 모임, 그게 내 핏줄


야구 관람 이후 두 번째 이벤트가 생겼다. 사촌 모임이다. 어릴 땐 부모님들끼리 만날 때나 함께 얼굴을 보던 사이였는데, 어른이 되고 각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니, 이런 자리도 다 생긴다.


성인이 되고 놀기 바빠 명절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결혼과 출산은 많은 걸 바꾼다. 가정을 꾸리니 명절을 챙겨 다니기 시작한다. 이제 같이 술도 기울일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정말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지만, 서로의 부모님이며 어린 시절 모습까지 잘 아는 친구 같은 느낌이다. 쾌쾌 묵은 말일 수도 있지만,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친가 친척들은 술을 좋아하고, 잘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오래도록 안 만났고 같이 술도 마신 적이 잘 없지만, 대충 내 사촌들이 어느 정도 주량일지는 예상이 간다. 게다가 결혼한 배우자들도 지지 않는 애주가들인 모양이다. 내 스위치온 일정 중 가장 거센 ‘술’의 유혹이 몰아치는 자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우선 선제적으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보쌈’과 ‘회’를 제시하며, ‘내려놓지 않았음’을 어필했다. 그리고 함께 술을 사러 갔을 때도 제로칼로리 논알콜 맥주를 집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 중’이라는 핑계로 술을 마냥 거절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 요인은, 모이는 친척 중 한 명이다. 운동을 낙으로 삼고 아주 성공적인 바디프로필도 찍어본 경험이 있는 아이다.


아마도..

‘누나, 하루 먹는 걸로 크게 안 바뀌어’

정도의 패턴일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 뭐 사진 같은 거 찍어?”

”언젠데?“

“아 뭐야 한참 남았네. 직전에 딱 2~3주 잡고 하면 몸 나와. 오늘 같은 날은 좀 맘 편히 먹자”

“우리가 이렇게 보는 게 처음이다 처음!”


이겨낼 수 없는 강한 설득


설득에 못 이겨 와인을 한 모금 받은 게 시작이었다. 조금씩 조절해 가며 먹었지만 와인 한 잔, 맥주 두 잔 정도를 마시게 됐고 6시부터 시작된 모임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술보다 진한 핏줄의 대가

돌아온 다음 주 인바디. 철퇴를 맞을 시간이다.

스위치온 3주차 마무리 Check

체중 59.1kg (시작 대비 -0.9kg)
골격근량 24.6kg (+0.2kg)
체지방량 14.2kg (-0.8kg)

내장지방단면적 55.6cm2 (-7.0cm2)
세포내수분 20.4L (+0.2kg)
세포외수분 12.5L (-0.1kg)

(Inbody 770)


시작 수준으로까지 돌아가진 않았지만, 지난주 한 주를 고스란히 역행한 성적이다.


골격근량의 증가는 수분 증가로 인한 착시일 뿐이고, 체지방량은 지난번 기록 보다 0.6kg이나 늘었다. 내장지방단면적은 지난번이 아니라 지지난 번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으로, 3.6cm2이나 늘었다. 약간의 물, 그리고 순수한 지방으로 만들어 낸 수치다.


내가 일탈을 하긴 했지만 정말 고삐를 풀고 편하게 하루 먹은 것도 아니고, 고작 맥주 두 잔에 이렇게까지 돼야 했는가. 이젠 억울하기까지 하다.



나름 합리적인 자기 합리화

그리고 분노에 차서 생리 주기 어플을 확인해 본다.

분노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생리 주기 전후로 수분 비율이 조정되면서, 인바디에도 오차가 생길 수 있다던데. 바로 그거다. 내가 거기 당한 거다. 그렇게 믿어야 이 몸무게가 설명이 된다. 하루 만에 이렇게 찔 리가 없다.

이 분노도 괜한 억울함은 아니다. 지금 난 단지 호르몬의 노예가 된 것뿐이다.


이 일탈에 대한 처벌과 같은 체중과 지방량은 내 것이 아니리라 믿기로 한다. 주말을 지낸 바로 다음 월요일은 단식이다. 게다가 4주차는 하루 걸러 한 번씩 총 3번의 단식을 치르고, 그러면서 생리 주기를 지나가게 된다. 모든 것이 끝난 그 뒤의 결과를 내 것으로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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