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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이선종 Sep 17. 2019

못하는 걸 하려고 하니까 어렵지

욕심 많은 뉴매니저

2019년 9월이 지나면 에이전시라는 업계에서 일한 지 만 12년이 된다

지난 12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누군가는 내 USP를 참을성으로 말해줬던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노력이라고 말해줬던 감사한 사람도 있었다. 절대적으로 나를 좋게 평가해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이지만, 이 힘들고, 더러운(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이쪽도 깨끗함) 업계에서 나를 지탱했던 건 첫 번째 회사 대표님이신 신병철 박사님이 말이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내 생각 속에서 많이 변질됐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렇다. 

우리는 꿈을 팔아야 한다.
우리가 쓰는 제안서에는 그 제안을 준비하는 사람의 꿈과 그 과업을 담당하는 사람의 꿈, 그 브랜드의 꿈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건 비단 제안서를 쓸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데일리 콘텐츠에도 꿈이 담겨야 팬들은 반응하고, 공유한다. 주간 콘텐츠 플랜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꿈을 팔아야 기대감을 갖고 다음 주를 맞이할 수 있다. 최근 나는 얼마나 자주 이런 생각을 하며 업무를 했던가? 많이 반성하게 된다 


요즘 내가 좀 별로예요

2019년 8월 1일, 도모브로더에 디지털PR파트 사업부장이 됐다. 사업부장이란 그 사업 본부를 책임지는 역할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 '책임'이라는 정의되지 않은 단어가 밉고, 싫었다. 그러면서도 같이 일하는 도모얀들에게는 책임을 강조했다. 독재자처럼... 


회사원으로 책임이란 무엇일까?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운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노력하지도 않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걸까? 가 최근 내게 가장 큰 챌린지였다. 좋지 않은 인사 평가를 받고, 승진 대상자임에도 승진하지 못하고, 연봉 동결과 감봉, 마지막에 퇴사까지 이어지는 누구나 아는 스토리가 책임일까? 그 사람이 없어지기만 한다면 그 자리는 좋은 누군가로 채워지는 걸까?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아직도 고민스럽다. 


사업부장이 된 1.5개월 간 도모브로더가 지금 위치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해야 한다고 스스로 강박받고 있었다. 멋진 포지셔닝 전략을 짜고, 그 기획안을 가이드북처럼 따르면서 일 년을 버티겠다는 책상머리에서만 했던 고민들... 그 과정이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가이드북처럼 흘러가지도 않고, 이 업의 특성상 클라이언트가 원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90% 이상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고, 내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본업보다 보이는 게 먼저였고, 있어 보이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힘들고 못하는 걸 잘하는 척해야 했으니까... 


그 더러운 손 PPT에서 치워 

나랑 오래 일했던 사람이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라며 나를 놀릴 때 쓰는 말이다. 실제로 저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보통은 지금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차갑게 보낸 적이 많았다. "내가 할 테니까 퇴근해"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한 내 방식의 배려였고, 자부심이 었다고 치자. 그만큼 그 영역에서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요즘 난 못하는 한글 문서를 계속 거지 같이 만드는 일을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파워포인트로 돌아가야겠다. 그래야 나를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을 욕되게 하지 않는 거라는 걸 아니까... 


오늘의 결론 

에이전시는 꿈을 판다. 꿈을 판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능토록 만드는 놀라운 일이니까! 

어메이징 에이전시, 도모브로더 


Thank you, E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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