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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이선종 Jan 06. 2020

링에 오르다

연습과 실전의 차이

2019년 12월 말, 다시 복싱을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열심히 다닌 헬스장은 추억만 간직한 채 조금 다른 운동을 하고 싶었다. 적당히 운동량이 있으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 그런 운동을 찾던 중에 회사 근처에 복싱장이 오픈했다. 생각했던 땀냄새에 찌든 곳도 아니고, 적당한 어두움과 신선함에 이끌려 2018년 나는 복싱을 등록했다. 등록은 쿨거래로 6개월.

시작은 좋았으나 개발과 야근, 내 몸의 변화까지 스스로에게 수많은 핑계를 들이밀며 유령회원이 되어갔다. 그렇다. 나는 복싱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회원이었다. 새로운 해를 맞으며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여전히 복싱이었다. 제대로 해 보지 못했는데라는 아쉬움을 포함해서...


1주일이 지난 현재, 머 나름 열심히 다니고 있다. 기초 체력과 자세 훈련을 하며 보내던 중 오늘 관장님께 솔직한 제안을 받았다.

스파링 한 번 해 보세요. 복싱은 링에 올라가기 전과 올라간 후로 달라져요


요즘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보겠냐라는 모드로 살고 있어서 무서웠지만 "일단 Go"로 샌드백을 치며 불안함과 초조함을 달랬다. 배운 걸 사람 얼굴에 해 보세요! 라는 하나의 오더를 받고 2라운드를 링 위에서 보냈다. 물론 상대는 전문가로 공격은 거의 안 하시고, 방어만 해 주셨다. 얼굴로 공격해라! 라는 하나의 오더를 품에 안고 시작했지만, 유효타는 1대로 못 쳤다. 내 주먹은 슬로비디오처럼 느렸고, 상대방 주먹이 날아오면 눈 감기에 고수가 되었다. 살살 맞은 카운터에 머리는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의 2라운드가 끝나니 느낄 수 있었다

연습과 실전이 얼마나 다른지를... 실전에는 연습한 거에 10%도 쓰기 어렵다. 두려움이 50% 뺏어가고, 분위기가 49%를 뺏어간다. 그럼에도 이 경험은 새로운 도전 목표를 부여했다. 생애 처음 스파링이 끝나고 나니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스파링을 생각하며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다. 졌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매일 샌드백을 치던 날보다는 아주 큰 소득이다.


고수의 여유는 배려에서 나온다

#졌잘싸 도 아니고 스스로 찌질한 스파링이 끝나고 상대해주신 고수 분이 말했다.

원, 투 엄청 빠르고 좋았어요

이건 내가 빠른 것이 아니다. 스파일 내내 원, 투 밖에 하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원, 투뿐...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배려, 초심자에 대한 자신감 회복을 위한 케어를 해 주는 것이다. 멋졌고, 배워야겠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올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역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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