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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동준 Jan 28. 2016

[讀後感] 공부중독

출판사 : 위고

저자 : 엄기호, 하지현




서른살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다니고 있던 공연장 설계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융통성 없는 태도가 임원들 눈에 답답해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부사장이 시킨 편법적인 일을 두 차례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실직 며칠 후 만난 후배가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원자핵공학 전공자 공채를 하고 있으니 지원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당시는 원자력 신르네상스라고 해서 전공인력의 수요가 급상승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학부때 전공 공부 한게 없는데, 내가 어떻게 지원을 하냐고. 엄기호, 하지현의 <공부중독>을 읽으면서 당시 생각이 많이 났다. 


무얼 얼마나 알아야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해야할까? 그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은 누가 말해주나? 입사에 성공하면 준비가 다 된 것이었고, 취업을 못하면 덜 준비된 것인가? 결과로서 과정을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 이후 6년의 시간 동안 일했던 예술분야도 사실 무얼 알고 시작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좀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지식의 근육들을 만들어갔다. 이런 학습을 PBL(Problem Based Learning)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물론 사회의 구조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면 현장의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대기업과 공무원이 아닌 다른 직업에서 야성을 발휘한다고 예전처럼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도 할 수 있다. 알고 있다. 그걸 충분히 알고 있고, 공감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 너머에서 한 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게 있다. 야성이 무모한 시대 때문에 도전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이 발목을 붙잡는 것은 아닌가? 스타트업의 초라함이 싫어서, 혹은 망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때문은 아닌가?


테슬라의 사장인 앨런 머스크는 페이팔(paypal)이라는 초대박 서비스를 만들기 이전에 자신을 시험해보았다. 매일 감자칩만 먹으면서 살아도 우울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 달 정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비용은 대략 200달러가 들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에 200달러 이상만 벌면 되겠다는 마지노선을 정하고 페이팔이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살고 있는 삶의 필수 조건들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남들 사는 기준이 바로 그 필수조건이 되고 만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면 반드시 그 조건을 스스로 시험해봐야 한다. 내 삶의 마지노선이 어디인지? 그래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


공포는 대상보다 먼저 마음에서 일어난다.


삶의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빈자가 불행한 것이 아니고, 모든 부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 삶의 마지노선은 내가 결코 훼손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념이며,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될 수 있다. 그걸 그 개인의 고유한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그 고유함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성찰과 도전이 필요하다.


모두가 학자가 될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모두가 필요 이상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저자의 얘기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 미친 게임에서 벗어나라는 저자의 대안은 나에게는 공허하다. 벗어나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실체 없는 거대한 두려움이다.


덴마크의 사람들을 그룬투비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덴마크의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룬투비의 교육 사상을 실현하는 덴마크 자유학교에서는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6개월정도 가진다고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람들을 자신을 삶의 지탱해줄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학교가 바로 그런 학교이다.


'공부'가 어쩔 수 없이 '입시'와 동의어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필요한 것 역시 공부이다. 삶의 위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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