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름은 내 안에서 왔다

<핀드혼 산책 #_15>

by 지구별 여행자

<핀드혼 산책 #_15>



그 부름은

내 안에서 왔다




핀드혼 공동체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여기는 삶이 실험되고, 영성이 숨 쉬며, 개인의 가능성이 공동체적 흐름 안에서 뿌리내리는 살아 있는 토양이라는 것을 다섯 명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하나의 지구(One Earth>) 1983/4 겨울호에 실린 “On Vocation: Community and Calling”에서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자신의 ‘소명(vocation)’을 발견하고, 삶과 영성, 실천이 통합된 자기 존재를 실현하게 되었는지를 다섯 명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응답하며 살고 있는가?


케이 티프트(Kay Tift): 항복을 통해 소명을 회복하다

케이 티프트는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다양한 학습 설계와 집단 훈련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전문 교육자였다. 하지만 핀드혼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처음 배치된 곳은 청소를 하는 하우스케어(Cluny Housecare)였다.


그녀는 실망했고,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처음 1년간은 “왜 나를 활용하지 않느냐”며 조직 내 긴장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3시.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고, 깊은 내적 전환의 순간을 맞이한다.


“좋아요, 하나님. 이제 그만 제 뜻을 내려놓고 당신 뜻에 따를게요.”


그로부터 며칠 후, 하우스케어 팀의 리더였던 인물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고, 케이가 그 자리를 맡게 된다. 자연스레 그녀의 교육적 접근과 인간 중심의 리더십이 공동체 내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그룹워크, 공동체 운영, 워크숍 리더로 활동하며 말한다.


“이 공동체는 살아있는 연구실이에요.
지금 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과 집단을 이해하고 있어요.”

케이에게 핀드혼은, 자신의 전문성과 영성이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소명으로 꽃피우는 장소가 되었다.


밴스 마틴(Vance Martin): 흙과 사람, 두 자연과의 연결

밴스 마틴은 처음부터 자연과 함께 일하겠다는 강한 내면의 부름을 가지고 핀드혼에 들어왔다. 그는 “나는 자연과 연결되고 싶다”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열망으로 컬런 정원(Cullerne Garden)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숙련된 원예가인 프레드 바튼(Fred Barton) 밑에서 정원일을 배우며 성장해갔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정원에 머물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는 공동체 행정, 코어 그룹 운영 등에서 리더십을 맡으며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된다.


“나는 식물만 배운 게 아니에요. 사람도 배웠죠. 인간의 본성과 함께 일하는 법을요.”


그는 자연과 인간 공동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환경운동에 본격 뛰어든다. 특히 그는 세계 야생지대 회의(World Wilderness Congress)를 핀드혼에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건 단순한 커리어가 아니에요. 안에서 울리는 어떤 부름에 응답한 거죠.”


그는 자연의 순환처럼 자신의 소명도 순환하며 깊어졌고, 공동체는 그 순환을 위한 따뜻한 흙이 되어주었다.


프랑수아 듀케인(François Duquesne): ‘지금 여기’에 응답하기

프랑수아 듀케인은 프랑스의 명문 경영대학을 졸업하고도 그가 향한 곳은 기업이 아니라 핀드혼이었다. 그는 공동체 내 외부 소통, 비전 설계, 대표 강연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고, 공동체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는 말한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나는 평화롭습니다.”


그에게 소명은 계획된 커리어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응답이었다. 그는 덧붙인다.


“궁극적으로 내가 해야 할 약속은 커리어나 핀드혼이 아니에요. 바로 내 영혼에 대한 것이죠.”


크레이그 깁슨(Craig Gibsone): 공동체의 부모가 된 기술자

크레이그는 전기, 목공, 정원, 무용, 도예, 연극 등 다재다능한 기술과 예술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공동체의 수많은 일들을 거치며, 언제나 필요한 곳에 응답하는 ‘로버(Rover)’처럼 움직여왔다.


그는 공동체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공동체의 부모가 되고 싶어요. 우리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는 사람 말이에요.”


크레이그에게 있어 핀드혼은 ‘요가’와 같은 공간이었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나는 핀드혼에서 내 높은 영적 이상부터 하수도 관리까지 함께 하며 춤을 춥니다.”


그의 소명은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흐름을 감싸 안는 ‘삶의 장인’이 되는 일이었다.


메리 잉글리스(Mary Inglis): 글쓰기로 소명을 이어가다

이 글을 쓴 메리 잉글리스 역시, 핀드혼에서의 오랜 시간을 통해 자기 소명을 재발견했다. 언론과 교육을 경험한 그녀는 처음에는 1년만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어느덧 10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언제나 글쓰기를 좋아했고, 교육과 소통이 내 삶의 흐름이었어요. 핀드혼에서 그 흐름이 더 또렷해졌죠.”


그녀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일’이 서로 조응하며 점점 명확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 흐름은 항상 나와 함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에요.”


소명은 밖이 아닌 안에서 온다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진실로 귀결된다. 소명은 특정한 직업이나 외적 타이틀이 아니라,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는 살아 있는 과정이라는 것.


그들은 모두 공동체라는 유기적 흐름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조용히 묻고 응답하며 삶을 예술처럼 다듬어갔다.


프랑수아 듀케인의 말처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
그것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핀드혼은 바로 그런 ‘내면의 부름’을 존중해주는 곳이었고,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주는 토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