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통치의 대상인가, 시민의 공동체인가?

04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by 지구별 여행자

04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도시는 통치의 대상인가,

시민의 공동체인가?

막스 베버(Max Weber)의 <The City)를 읽고



베버의 도시, 단순한 집적지가 아닌 ‘정치적 결사체’

막스 베버는 도시를 단순히 인구나 경제 활동이 집중된 공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도시를 법적 자격을 지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형성한 정치적 결사체, 즉 스스로 질서를 형성하고 통치할 수 있는 자치적 공동체로 이해했다. 이러한 베버의 도시 개념은 단순한 공간적 응집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구조를 전제로 한다.


그가 제시한 도시의 ‘이상형(Ideal Type)’은 다섯 가지 조건을 통해 설명된다. 첫째, 도시는 자립적인 경제 기반을 갖춘 영속적인 시장을 지녀야 한다. 둘째, 도시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인 재판권이 있어야 한다. 셋째,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화된 구조, 즉 방어 능력이 전제된다. 넷째,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운영할 수 있는 정치적 자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합이나 시민단체 같은 결사체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 결합이 도시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막스 베버의 도시 이상형(Ideal Type)>

영속적인 시장: 도시가 자립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으로, 상업적 흐름의 지속성 보장

자체 재판권: 도시 내 분쟁 해결과 질서 유지를 위한 독립적 사법 권한

요새화된 방어 능력: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정치적 보호 장치

정치적 자치권: 도시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운영하는 정치적 자율 구조

조합 중심의 시민 결사체: 길드나 시민 조직 등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정치적 결정을 실현하는 네트워크


이러한 요건들이 충족될 때, 도시는 비로소 시민이 주체가 되어 삶을 함께 구성하는 공공적 공간, 곧 정치적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다고 베버는 보았다.


도시의 몰락: 근대국가와 관료제의 등장

그러나 베버는 중세 도시의 이러한 정치적 공동체성이 근대국가의 출현과 관료제의 부상으로 인해 점차 해체되었다고 보았다. 중앙집권적인 국가 권력이 강화되면서 도시는 점차 국가 행정의 하위 단위로 흡수되었고, 시민의 정치적 참여는 축소되었다. 시민은 더 이상 도시의 공동 운영자가 아니라, 행정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수령하는 수혜자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변화는 도시의 본질적 특성을 바꾸었다. 도시의 자율성과 공동체성은 국가가 설정한 법률과 규율에 따라 운영되는 행정 단위로 전환되었고, 그 속에서 시민은 더 이상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통치의 객체로 변모했다. 베버는 이러한 과정을 도시의 ‘몰락’으로 진단했다.


오늘날의 도시: 고도로 행정화된 통치체계

현대 도시는 베버가 우려한 도시 몰락 이후의 양상이 더욱 제도화되고 구조화된 형태로 나타난 결과물이다. 오늘날 도시는 다양한 행정 체계와 관료제적 장치를 통해 고도로 조직화된 통치 대상이 되었다. 도시계획은 전문가와 민간 위탁업체 중심으로 운영되며, 시민 의견은 단순한 ‘의견 수렴’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복지와 보건 서비스도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제공되지만, 시민 간의 상호적 돌봄은 체계적으로 유도되지 않는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보는 주로 행정 내부에서 독점되고 있으며, 시민들은 실질적인 정책 감시나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다양한 시민 참여 제도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형식적 수준에 머물며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시민은 도시의 주인이 아니라, 도시 행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민은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보다는, 규정된 틀 안에서 행정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혜자’로 위치 지워지고 있다. 이는 시민성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구조로 작용하며, 도시의 민주적 정체성을 위협한다.


시민적 대안: 공동체 민주주의의 재구성 가능성

도시를 다시 시민의 공동체로 복원하기 위한 대안적 시도는 학계와 실천 현장에서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피터 블록(Peter Block), 존 맥나이트(John McKnight),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 머레이 부크친(Murray Bookchin) 등은 도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 주도 거버넌스와 공동체 중심 실천을 제안한다.


이들은 우선, 생활권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자치 거버넌스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주민총회, 마을계획단, 시민의회, 참여예산제 같은 제도는 행정에 예속되지 않고, 시민들이 스스로 정책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또한, 도시 공간을 시민이 함께 관리하고 운영하는 공유자산(Commons) 기반 운영 방식을 제안한다. 지역 커먼즈로 운영되는 마을회관, 공유부엌, 협동조합 등은 자원의 사유화에 저항하며 공동의 삶을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


이와 동시에, 관료제를 단순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권력 분산, 정보의 개방, 예산 민주주의, 비전문가의 제도적 참여 보장 등 구조적 재편을 제안한다.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 구조를 해체하고, 시민이 일상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막스 베버는 도시를 통해 시민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였다. 그는 도시를 단순한 거주 공간이나 행정 구역이 아닌, 시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정치적 공동체로 정의했다. 그의 도시 이상형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도시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가 고도로 관료화되고 행정 중심의 통치 체계로 편입된 지금, 시민들은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통치의 대상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체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거 도시가 어떻게 시민 주체의 공간으로 작동했는지를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세 도시의 핵심적인 정치적 기반이었던 ‘조합 중심의 시민 결사체’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당시의 시민들은 길드(guild)나 시민 조직을 통해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정치적 결정을 실현해 나갔다. 이는 행정에 예속되지 않고, 시민 스스로가 도시를 조직하고 운영했던 살아있는 실천의 장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도시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도시는 단지 통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시민은 다시 정치적 주체로서 도시를 재구성할 수는 없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추상적 사유가 아니다. 오늘날 행정권력의 고도화, 정보의 비대칭, 참여의 형식화 속에서 도시민의 시민성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며 도시를 다시 공동체로 되돌리기 위한 시도는 단지 제도적 개혁이 아니라 정치적 상상력의 회복이며, 삶의 방식에 대한 재정의이기도 하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가,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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