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_시대를 잇는 질문
07_시대를 잇는 질문
참여는 ‘함께 앎’을 만드는 과정
참여는 단순히 ‘참석하는 일’이 아니다.
참여는 함께 알아가는 일, 함께 느끼는 일, 그리고 함께 결정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세상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며 운영되어 왔다.
학문은 대학의 영역이었고, 정치 결정은 관료와 지도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변화는 분명하다.
시민은 더 이상 단순한 수용자나 구경꾼이 아니라,
공동의 지식 생산자이자 민주주의의 공동 설계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이 문제는 내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 말은 곧, 참여의 시작이자 질문의 탄생이다.
참여는 지식을 나누는 행위이며, 그 안에서 시민들은 세상을 새롭게 해석한다.
시민과학 ― 과학을 다시 시민의 손으로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은 과학의 권위를 시민의 일상으로 되돌려놓는 실천이다. 기후 변화, 미세먼지, 하천 수질, 생물 다양성, 도시 생태계 등— 이제 시민들은 연구자가 되어 데이터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모 자치구의 시민모니터링단은 매주 하천의 수질을 측정하고, 물고기 개체 수를 기록하며, 그 데이터를 공개 플랫폼에 올린다. 이 데이터는 지자체의 관리 체계를 보완하고, 때로는 정책 방향을 바꾸는 근거가 된다.
또 다른 사례로, 유럽의 “AirVisual 시민 대기 프로젝트”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이 개인 센서를 통해 대기질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오픈소스로 공유한다. 이로써 정부의 공식 데이터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지역 단위의 공기 질 변화를 시민들이 직접 시각화했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생겨나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데이터를 생산하고, 누가 그 데이터를 사용하는가?”
과학은 더 이상 실험실의 언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의 관찰과 현장의 감각이 더해질 때, 비로소 과학은 공동의 지식, 공감의 언어로 바뀐다.
시민과학은 ‘참여의 과학’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배운다.
“나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함께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주체다.”
커뮤니티 맵핑 ― 지도는 삶의 이야기다
지도는 오랫동안 권력의 도구였다. 국경을 긋고, 자원을 표시하고, 통치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커뮤니티 맵핑(Community Mapping)은 그 권력을 공동체의 손으로 되돌려 놓는다.
한 마을의 지도는 행정이 놓친 것을 담는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이들이 뛰어놀던 공터, 어르신들이 모여 앉던 정자, 낡은 시장의 온기,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던 작은 골목.
이 모든 점과 선과 색깔이 모여 ‘삶의 얼굴’을 이룬다.
예를 들어, 어느 한 마을의 ‘마을이야기 지도’ 프로젝트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자신이 기억하는 장소를 지도에 표시했다. 그곳에는 행정지도에 없는 이름들이 등장했다.
“할머니의 우물”, “우리의 그늘 벤치”, “첫 번째 눈사람 자리.”
이 지도들은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 관계, 그리고 감정의 지도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새롭게 묻는다.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이 기억은 누구의 소유인가?”
커뮤니티 맵핑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지도 위에 점을 찍는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공간은 다시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변한다.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가?”
참여적 거버넌스(Participatory Governance)는 행정이 더 이상 ‘위로부터의 지시’가 아니라, ‘옆으로부터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뜻한다. 전통적인 행정은 전문가 중심, 문서 중심, 회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는 다르게 묻는다.
“그 결정에 우리 삶의 목소리는 얼마나 담겨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투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참여예산제’는 시민이 직접 지역의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어느 마을의 주민은 “마을버스 노선이 아이들의 통학길과 맞지 않는다”고 제안했고, 그 제안은 실제 행정 결정으로 반영되었다. 이것이 바로 참여가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시민은 더 이상 “정책의 수용자”가 아니다. 그들은 공동의 기획자(co-creator)로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설계하며, 결과를 평가한다.
참여적 거버넌스의 본질은 ‘대화’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위에 세워진다. 대화는 정책보다 오래가고, 신뢰는 제도보다 강력하다.
“지역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는가?”
오늘날 지역의 문제는 결코 지역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고, 미세먼지는 바다를 건너며, 쓰레기와 자원, 데이터는 세계를 순환한다. 한 마을의 생태적 실천이 다른 나라의 공동체 운동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파라비아고 에코뮤지엄(Ecomuseo di Parabiago)은 SDGs와 결합하여 기후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데이터는 지역 행정뿐 아니라 국제 환경 플랫폼과도 연계되어 유럽 차원의 정책 논의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도 경기만 에코뮤지엄에 이어 경기에코뮤지엄으로 확장되면서 경기도 곳곳에서 지역 주민의 참여로 갯벌, 농경지, 생태습지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경험은 단지 ‘지방사업’이 아니라 COP30 등 국제회의에서 ‘로컬-글로벌 거버넌스 모델’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제 거버넌스의 범위는 마을에서 지구로 확장된다. 지역은 더 이상 세계의 ‘끝’이 아니라, 세계로 향한 출발점이다.
참여 속에서 피어나는 질문들
참여의 과정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한다.
“지식은 누구의 것인가?”
시민과학은 전문가 중심의 지식을 넘어, 시민이 직접 관찰하고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식의 민주화는 곧 권력의 분산을 의미한다.
“공간은 누구의 기억을 담는가?”
커뮤니티 맵핑은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공간의 주체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는다.
“참여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신뢰와 관계 속에서 문화로 자리 잡을 때 진정한 참여사회가 만들어진다.
“지역은 세계와 어떤 언어로 대화할 수 있을까?”
지역의 실천은 곧 글로벌 연대의 첫 걸음이다. 작은 마을의 목소리가 지구적 담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
참여는 질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참여는 단지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함께 사유하는 과정이다.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가?”
“지역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는가?”
이 두 질문은 단순히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깊이를 묻는 철학적 물음이다.
참여 속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은 결국 ‘관계의 정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는 공동체를 다시 상상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자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정치는 말하고 듣는 인간의 능력에서 태어난다.”
참여란, 바로 그 능력을 되살리는 일이다.
시민이 말하고, 행정이 듣고, 지역이 응답하며, 세계가 공감하는 과정.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함께 앎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그 질문이 바로, 새로운 문명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https://youtu.be/8O7NoYtYX10?si=-SHXTppGKR9K0dv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