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학자, 한국사회의 시대적 주요 의제가 된 사회적경제를 알아가다 보면 한 번쯤은 만나는 위인이 있다. 바로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년 5월 14일 ~ 1858년 11월 17일)이다. 공동체 또는 협동조합 운동의 창시자로 일컫는 로버트 오웬의 기운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맨체스터 주의 도시 중의 하나인 로치데일이자 그곳에 자리한 로치데일 뮤지엄이다. 오웬은 우리에게 사회개혁가,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영국 사회에 산업혁명의 바람이 휘몰아칠 때, 그 현장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한 사람이 오웬이었다. 그는 뉴라나크 방적공장에 유치원,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노동자를 위한 야간학교를 개설했다. 노동자 자녀를 위한 교육과 노동자에 대한 교육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하루에 17시간의 강행군을 하던 노동 시간을 10시간 반으로 줄이고 10세 이하의 아동의 노동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스스로 자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주적 생산관리제도를 도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외에도 노동자가 저렴한 가격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도 만들었다. 오웬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노동력 강요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 복지를 강화시키면 생산성은 높아진다고 보았다. 그의 사상은 방적공장에 적용되었고 그 성과는 엄청났다. 유럽 전역에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곳에 견학하는 지식인과 기업인이 한 해 수 만 명에 이를 정도로 방적공장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로버트 오웬의 꿈은 뉴라나크 방적공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주관리에 기반한 자급자족 협동조합 공동체 건설이 그의 생애에 원대한 목표였다. 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 인디애나 주로 건너갔다. 그곳에 8천 여 헥타르 규모의 농지를 구입하고 그곳을 <뉴 하모니>라고 명했다. 그의 원대한 꿈은 야심 차게 시작했으나 시작한 지 불과 2년도 안되어 그 꿈은 사라지게 된다.
오웬은 꿈은 사라졌다. 사라진 꿈이 아쉬웠을까. 그의 이상향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명 오웬주의자들이다. 그의 사상에 기초하여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협동조합 공동체 세상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현상을 <오웬주의 협동조합 운동>이라고 불렀고 영국 전역에 300여 개에 이르는 협동조합 현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가 1830대의 일이다. 오웬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공동체에 필요한 출자금 정도는 노동자 스스로 마련하여야 자신의 일터에 대한 소속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직접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오웬이 주장했던 노동자에 의한 자주관리의 진정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한 이들이 월리엄 톰프슨과 월리엄 킹이었다. 이들은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본,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훗날 그들의 생각이 로치데일 협동조합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