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협동조합 운동의 발상지
로치데일 파이오니아 뮤지엄(Rochdale Pioneers Museum)은 Rochdale Equitable Pioneers Society가 1844년 12월 21일에 처음 거래를 시작한 건물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뮤지엄이다. 이 뮤지엄은 현대 협동조합 운동의 발상지로 여기는 곳이다. 그들은 지금의 뮤지엄이 있는 자리에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협동조합 이름은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이었다. 1844년 12월에 개조된 창고의 눅눅한 바닥에 모여 이들은 야심 찬 결의를 한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산업혁명 과정에 보여 준 자본주의의 질주 때문이었다. 산업 부흥기를 지나면서 굶주린 40년대의 경제적 재앙을 목도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다. 이들은 로버트 오웬의 협동조합 정신을 이어받은 월리엄 킹과 톰프슨의 뜻을 같이했다.
개조된 창고에 모여 협동조합을 결의할 당시 사회분위기는 매우 참혹했다. 당시 사회는 자본가와 소수 엘리트 중심의 사회였다. 당시 사람들은 자본가를 자연의 섭리와 이치에 합당하게 기획된 지배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가를 떠받드는 분위기였다. 자본가와 노동자,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사회적으로 엄청났다. 노동자는 자본가를 위한 노동의 수단으로 밖에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맨체스터에는 대형 방적공장이 있었다. 이 방적공장은 세계 최초로 증기관을 이용하여 면방직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소수 엘리트를 위한 삶이었다. 이러한 노동자의 삶은 자본자와 소수 엘리트에게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을 공급받는 정도였다. 당시 노동자의 합숙소인 <천사의 초원>가 있었다. 이 합숙소는 형편없는 노동자의 임금, 매우 불결한 주거 환경은 자연스럽게 빈민가가 되었다. 결국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맨체스터는 농촌의 가난한 노동자를 해방시키지 못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엥겔스는 당시 <천사의 초원>라는 합숙소를 지상의 생지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노동자의 삶의 질은 매우 열악했다. 그뿐 아니라 1819년 맨체스터 피털루 학살사건은 자본가와 소수 엘리트에게 반감을 키운 사건이 되었다. 당시 노동자의 시위 현장에 투입된 기병대는 사망자 15명과 600여 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낳게 된다.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자본가와 소수 엘리트가 장악한 영국 사회와 산업 부흥기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했다. 그 틈새에 등장한 것이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로치데일의 협동조합은 1844년 12월에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 이름으로 문을 열게 된다. 당시 이들은 1주일에 2펜스씩 1년 동안 1파운드를 모은 28명의 노동자가 출자한 점포를 열었다. 이 점포는 일주일에 야간에 세 번 여는 가계였다. 당시 점포에는 밀가루, 버터, 곡물가루, 설탕과 양초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 정도만 판매할 정도로 열악했다. 초라하게 생필품 판매로 시작한 점포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의 원조가 되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사람은 뮤지엄의 관리인 리즈 맥클버(Liz Mclvor)였다. 그의 명찰은 코 오퍼레이 티브 헤리티지 트러스터(Co-operative Heritage Trust)라고 적혀있다. 우리말로는 협동조합 유산 신탁이다. 이 기구는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를 보전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이 뮤지엄은 이 기구 관계자들이 로치데일의 정신을 소개하고 그날의 기억을 이어가는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