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서 조울로

by 행동부자

1998년, 나는 처음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아버지가 내 증세가 심해지자 입원 결정을 내리셨다. 군 면제 판정이 내려질 만큼 상태는 심각했다. 깊은 우울이 길게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며 조울증의 얼굴이 나타났다. 잠은 얕아지고 생각은 과속했다. 어떤 날은 나를 과대평가하며 밤을 지새우고, 어떤 날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노트에 자가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수면 시간, 식사, 기분 점수, 충동, 약 복용 여부. ‘감정의 데이터’가 쌓일수록, 파도의 주기가 보였다.


치료는 ‘의지로 버티는 일’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기술이었다. 약의 용량과 부작용을 이해하고, 진료실에서 질문을 준비하고, 낙관과 비관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했다. 감정이 올라갈 때는 생활 속 브레이크를, 내려갈 때는 작은 동력을 찾아야 했다. 샤워, 햇볕, 십 분 산책, 지인에게 두 줄 메시지. 거창하지 않은 것들이 실제로 나를 살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혼자 견디지 않는 일이었다. 도와줄 사람의 이름을 적고, 실제로 연락하는 연습. “괜찮냐”는 질문 앞에서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용기. 병은 나를 정의하지 않았지만, 나의 생활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일 때, 나는 서서히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실패를 기록하는 법, 회복을 기록하는 법, 그리고 둘 사이를 오가는 법을.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하듯, 마음과 정신이 아플 때도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정신과’라는 이름이 요즘 ‘정신건강의학과’로 불리는 이유도 같다. ‘정신이 나간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정신의 건강을 돌보는 진료과’라는 뜻을 분명히 하려는 변화다. 이름이 바뀌자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치료는 낙인이 아니라 관리와 회복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진료실과 병동에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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