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요가의 성지에서

by 신발끈

발리를 여행지로 정한 또 다른 이유는 '요가'를 하기 위해서다. 심리건강을 위한 여러 가지 해법 중에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는 '명상'과 '자기연민'이다. 불안과 분노가 올라올 때 더듬거리며 '초심자용 설명서'를 따라 했더니 분명 효과가 있었다. 심호흡을 조절한다거나 힘들어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의 빈틈이 생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흡명상을 하거나 잠들기 전에 수면명상을 꾸준히 해보았다. 일상의 편안함이 커지고 불쑥불쑥 들끓던 마음도 차분해졌다. 기회가 된다면 전문가 코스를 밟거나 수련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올라왔다.

발리의 우붓은 '요가인의 성지'라는 곳이다. 여행자를 위한 초심자 수업과 전문가 수련과정도 널려있다. 그래, 우붓으로 가서 요가원을 부지런히 다녀야지 결심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요가반'이라는 요가원이 있었다. 요가반은 아마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원일 거다. 글로벌한 강사들의 다양한 수업이 빽빽하게 준비되어 있다. 인터넷 예약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첫 방문자는 45분 일찍, 다른 수강생들은 30분 일찍 도착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아침 9시 수업에 늦을까 애가 탔다. 구글지도를 보면서 부지런히 걸어 겨우 시간에 맞춰 '45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안내 데스크에선 30분에 접수를 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첫 방문자는 입회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신청자 명부에 이름과 이메일을 적고 정해진 요금을 납부하면 끝인 간단한 절차였다.


IMG_2221.JPEG 요가반의 보헤미안적 분위기는 나를 설레게 했다

나의 첫 수업은 '반야사 요가 플로우'였고, 첫 요가 선생은 금발의 긴 곱슬머리를 가진 훤칠한 키의 백인 여성이다.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모든 수강생들과 눈을 맞추고 '무엇에 집중하고 싶냐'라고 묻는다. 나의 순서가 다가올수록 발표를 앞둔 학생처럼 긴장이 되었다. '그냥 별거 없어요'라고 어색한 답변에 요가 선생은 환하게 웃는다.

빈야사 요가는 몇 가지 기본동작을 물 흐르듯이 진행한다. 요가 선생은 긴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나는 여전히 영어가 어색했고, 장소가 어색했다. 몸을 잘 쓰지 못해 휘청거렸고, 틀릴까 봐 주위의 눈치를 계속 살펴야 했다. 수업의 중반이 넘어가자 다리가 뻐근하고 허리가 아파온다.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울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계산하고 어서 끝이 나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잠깐식 몰입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몸뚱어리가 가볍게 느껴지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동작에 몰두하는 과정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한 시간 반이 지나고, 마룻바닥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휴식 자세에 들어갔다. 요가 선생이 뜻을 알 수 없는 마무리 멘트를 하는데 정신은 아득해지면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둘째 날 아침도 요가원으로 걸어간다. 어제보다는 십 분 늦게 출발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하타요가'를 신청했다. 두 번째 선생 역시 키가 큰 백인 여성이다. 그녀는 우아한 갈색의 긴 머리칼을 가지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번에도 모든 수강생들과 눈을 맞추며 무엇에 집중하고 싶은지 물어온다. 오늘은 '마음의 평화'라고 답했다. 선생은 수업을 마치면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고 따뜻하게 답해주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모두 선생 옆으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선생은 각각의 기본동작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물론 영어라 온전하게 이해하진 못했다.) 호흡이 어제보다 익숙해졌고 틀리면 어쩌나 조바심도 덜했다. 하타요가는 빈야사 요가와 비슷한 동작이었지만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선생은 기본자세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손과 팔을 부드럽게 움직인다. 대부분 백인 여성인 수강생들은 깡마르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체험으로 참여한 듯한 동양인들도 몇몇 보인다. 요가가 좀 더 좋아지려고 한다.

셋째 날은 '쿤달리니 요가'를 신청했다. 이제는 익숙한 길을 느긋하게 걸어갔다. 세 번째 강사는 역시 키가 큰 남성이었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턱수염을 기른 그는 나풀거리는 치마를 걸치고 있다. 이번에는 호흡에 더해 '음성'도 강조했다. 그는 뜻을 알 수 없는 '주문'들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아마 '발리어'나 '산크리스트어'가 아닐까 싶다. 수강생들은 일어나 주문을 외우며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반복되는 동작이 조금 지겨워지기도 했다. 몸을 많이 쓰지 않으니 정신이 방황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가 선생이 내뿜는 독특한 에너지를 느낀다. 그의 뒤에는 작은 붓다상이 놓여 있었고, 앞에는 향을 피워 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보헤미안의 삶은 저런 모습일까. 세상에서 독립하여, 맑고 아름다운 것들만 가득한 이곳 요가원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하지만 잠시의 체험이 끝나면 나는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겁이 났다.

지금의 감각과 기억을 잃지 않으려 하나씩 복기한다. 일상으로 돌아가 이를 지속할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내가 경험한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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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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