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네 살의 꿈
우연히 일기장을 뒤지다가 쉰네 살 때의 일기를 들춰보게 되었다. 내 오십 대의 치열한 삶에 대한 흔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고는 밤마다 끄적였을 고단한 기록들이 애처롭기 짝이 없어서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내가 26년 교직생활을 의도적으로 끝내고는 삶의 여유를 좀 누려볼까 했을 때, 남편 일이 잘못되어서 경제적인 시련이 찾아왔었다. 그때 속수무책이던 마음과 또 절절맸던 시간과 허둥대는 몸짓들이 그대로 일기장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거다.
화도 있고, 슬픔도 있고 원망도 있지만, 마지막 문장, "잘 될 것이다. 잘해보자,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로 힘을 냈던 흔적도 있다.
그중 한 페이지에는 '50대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내 꿈'의 5개 항목이 연필 글씨로 또박또박 쓰여있었다.
1. 공기 좋은 곳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
2. 벌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3. 떠나고 싶을 때 여행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있었으면 좋겠다.
4. 특별한 주택을 짓고 싶다.
5. 파워블로거가 되고 싶다.
갑작스럽게 찾아든 가난 속에서 노년의 꿈을 하나하나 끄집어냈을 마음은 얼마나 절실했을지 그림 보듯 훤했고, 또 그것들이 이루어지까지 얼마나 애썼을지 상상되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그때의 힘든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나는 두 번째 항목 "벌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에서 큰 아픔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연금만으로는 대학생 있는 4인 가족이 생활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하고 싶지도 않은 일까지 덥석 끌어안았던 순간이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항목 '파워블로거가 되고 싶다.'는 다소 미흡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블로그 포스팅을 매일 아침 끊임없이 올렸다는 점에서 보면 나름 목표 달성은 한 셈이다. 그렇다면 50대때 내가 꾸었던 5개의 꿈은 몽땅 실현 된거나 다름 없지 않는가?
한 장 넘기자 카네기의 말도 나온다.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10가지 중에 9가지는 일어나지 않고, 마지막 한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말로 위로받았을 당시의 근심 걱정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되면서 또 한 번 울컥하게 했다.
54살에 꾸었던 나의 소박한 꿈은 환갑에서야 이루어졌고, 그 귀한 사실을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예순아홉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식상한 말을 굳이 앞세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날의 일기를 통해 나를 재발견하고 토닥토닥해주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지 싶다.
일기장을 덮고는 두 팔로 엑스자 자세를 취한 다음 가슴을 감싸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면서 그동안 찌그러졌을 내 자존감을 살려줬다.
그날부터 난 다시 일기를 쓰고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늙어가는 소박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손글씨로 또박또박 쓰고 있다.
예순아홉 살의 꿈과 소망을 기록해 두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