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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꽃밭 가꾸며 산다

정원의 궁합

by 꼼지 나숙자

건강한 순일까?

아니면 이곳을 먼저 차지한 터줏대감이 꽃대를 가장 먼저 올리는 걸까?

수크령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차례차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면 식물들 사이에도 질서가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양지바른 곳을 골라 심은 홍띠자리를 넘보면서 수크령이 우쭐대는가 하면, 아직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은사초의 햇살을 슬쩍 가로채는 수크령도 있다.

올해 늦가을쯤 줄기를 잘라내면서 다시 한번 자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브라 억새처럼 몸집 큰 녀석은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고, 하늘을 뚫을 기세로 자라는 팜파스도 내년 봄에는 제대로 된 공간을 마련해줘야 할 것 같다.


남들이 잘 키운 모습을 보고 그 매력에 혹해, 나도⁠ 덜컥 따라 심었던 팜파스.

올해로 3년째지만 아직 꽃 한 번 못 보았다.

설령 꽃을 피운다 해도, 지금의 자리에서 그 우아함을 드러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안다.

무언가를 들일 때는 정원의 규모, 이미 자리 잡은 식물들과의 조화, 정원의 분위기, 그리고 정원사의 성향까지 잘 살펴봐야 한다는 걸.

내 정원에서 뽑혀 나가는 오이풀이나 자수정, 등골나물이 다른 이의 정원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다들 번식력이 부담스럽다며 고개 젓는 분홍낮달맞이가 우리 집 봄 정원의 시그니처처럼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자연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궁합은 들이기 전보다 들이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2~3년은 함께 살아봐야, 비로소 ‘이건 내 식구다’ 혹은 ‘이것은 아니다’는 판단이 선다.

그러니 정원사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일이 된다.


그라스 꽃밭을 마음에 그려본 지 어느덧 4년.

그동안 내쳐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간을 보는 것들이 하나둘 자리 잡아간다.

완성은 없어도, “이만하면 됐다” 싶은 순간은 있다.

놀랍게도, 그건 귀촌하고 꽃밭의 첫 삽을 뜰 때부터 내 안에 있었던 마음이었다.

아직도 변함없이 삽을 드는 이유, 아마 그 진심 덕분 아닐까.


잡초 무성하던 감나무밭일 때는

‘꽃밭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다’며 감사했고,

지금은 ‘제법 정원 같아졌다’는 안도와 창작의 기쁨이 있다.

내 정원을 가꾸는 8년의 노고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땅 위에 그림을 그린다.


완성되지 않아 더 아름다운 정원.

그 끝없는 여정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 한 몸을 부려,

지구의 한 모퉁이라도 더 깨끗하고 아름다워진다면,

그건 분명 의미 있는 삶 아닐까.


햇살 한 줌 깃들고,

바람 한 줄 머무는 곳,

그 속에 나의 투박한 손길 하나 스며 있다면—

나는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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