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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Jan 24. 2023

신입 유부녀의 첫 명절

결혼한지는 일 년 반 정도가 지났지만 명절에 떠난 해외출장과 코로나 덕택(?)에 올 설은 결혼하고 첫 명절이었다. 나의 첫 명절은 엄마의 걱정어린 전화에서부터 시작됐다. 첫 명절이라 친척들에게 인사를 가기로 했다는 것을 말씀드린 뒤로 나의 첫 명절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셨던 모양이었다. 티를 안내려 하셨지만 엄마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침내, 남편 본가에 내려가는 당일 엄마의 응원(?)은 극에 달했다. 


"엄마, 이제 서울역에 도착했어. 잘 다녀올게~"

"그래~ 가서 예쁨 많이 받고와~"


엄마의 응원이 묘하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쁨'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내가 그 '예쁨'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해야하는 걸까? 시부모님이 우리 본가에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미움받는 것 보다는 낫지 뭐' 라는 생각으로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사실은 엄마 뿐이 아니었다. '첫 명절'임을 얘기하면 직장동료나 친구들 조차도 내게 '음식하겠네' '고생하겠다'며 심심한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무언가 기혼여성들 사이에서는 명절에 이런 얘기들을 하는건가 싶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남편 집에서는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고, 큰 집에서 지내긴 하지만 그건 '부모님의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아니야'라고 이미 이야기를 한 뒤였지만 진짜 현실은 어떨까?하는 설렘과 긴장 사이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자주는 아니지만 결혼 생활동안 시부모님 댁에 놀러가면 난 정말 '딸 같은 며느리'였다. 각자 집에선 서로가 손님이니 '우리 집에선 우리가 할게. 너희가 설거지하면 정리를 한 번 더 해야되니 그냥 앉아있어라'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내가 입을 잠옷이나 홈웨어를 미리 준비해주시고 차린 밥을 먹기만 하면 되고 그 보답으로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정말 '먹고 자고 놀고' 와도 되는 그런 것 말이다. 명절이라는 이름을 씌워도 그대로였다. 도착했을 때 이미 자식들을 위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차려진 밥을 먹고 내가 할 일은 남편과 함께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는 것 뿐이었다. 아침에도 아무도 나를깨우지 않고 열 시 까지 늦잠을 잘 수도 있었다. 


골치아픈 이야기는 남편 쪽 친척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산모가 나이가 많으면 애 머리가 나쁘다', '젊었을 때 낳아야 몸이 편하다', '부모님께 친손주 안겨드려야지' 


모든 잔소리를 무던하게 넘기는 남편은 "어른들 하는 얘긴 어쩔수 없어. 우리에게 할 말이 없으니 그런거야. 한 귀로 듣고 흘리자"고 했다. 남편과 나의 성격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왜인지 나를 향한 말들인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이름의 무례함을 감당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재밌는건 시댁 식구들만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였다. 나의 친척집에 가서도 이러한 '걱정들'은 계속 되었다. '남편 살찐거 보니 잘 먹이나 보네?' '빨리 애 둘은 낳아야지' 등등..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은 없어지고 갑자기 '예비 엄마' 혹은 '남편을 챙기는 양육자(?)'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우리 집은 각자 잘 챙겨먹고 남편도 나도 서로의 커리어를 존중해주고, 집안 일이나 서로에게 요리를 해 주는 것을 서로 미루지 않고 각자가 가능한 때에 각자가 해줄 수 있는 범위에서 서로에게 해주는 편이라 실제 나의 삶과는 멀어서 였을까? 어른들이 살아온 삶은 지금 우리의 삶과는 다르니 그들의 삶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내게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얘기를 매 번 들어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딸이나 000대리의 역할에서 누군가의 며느리, 아내라는 역할이 내 인생에 추가된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결혼하니 행복하냐는 물음에 '굴욕적'이라고 답한 한 여자는 결혼하는 순간 한국사회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겪어보지 않은 ~해야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고 아무도 나의 에너지, 시간와 결정을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인생의 소유권이 내가 아닌 다른사람에게 넘어간 기분이라고 말했다. 


오늘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시간과 에너지, 내 결정을 스스로 존중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이것들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그런 일상으로 말이다. 지금의 이 삶이 좋다. 온전히 나로 인해 내가 살아가는 삶. 명절을 겪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이 소소한 행복이, 결코 소소하지 않은 아주 큰 행복이라는 감사함이 밀려온다.


삶의 크고 작은 순간들에서 나의 결정을 통해 증명되는 나의 행복들과 또 내가 선택한 결혼한 여자로서의 삶. 그것을 통해 느껴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끊임없이 내게 주어지는 '당위성', 내게 새롭게 부여된 역할들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법을 오늘도 고민해봐야겠다. 다음 명절에는 그 중심을 잡은 내가 혼란 속에 많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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