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W매거진 13호 <당신의 페미니즘>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13호 <당신의 페미니즘>편에 모개 님의 '여자는, 여자라서, 라는 말은 사양할게요'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
다 함께 잘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봄, 나는 반장선거에 나갔다. 주위 친구들의 응원과 해보고 싶다는 내 마음이 더해져 ‘반장이 된다면~’ 으로 시작되는 공약 발표까지 준비했다. 반장 선거 날, 나는 공약을 발표하며 내 발표를 듣던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내가 반장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모든 후보의 발표가 끝나고 투표가 시작되었다. 투표용지에 적힌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내 이름 옆의 바를 정(正)자도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총 32표, 또 다른 남자아이는 12표. 누가 봐도 나의 승리였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여자는 반장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결국 남자아이가 반장, 내가 부반장이 되었다. 뭔가 이상했고 억울했다. 친한 친구들은 내가 반장이라고 했지만, 나는 공식적으로 부반장이었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엄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후 학급 활동에 필요한 돈만 지원하셨고 학교에 한 번도 가지 않으셨다.
그해 가을, 엄마는 나를 전학시키며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갔고 모든 절차가 끝나고 교실을 나오며 선생님께 90도로 인사하며 “선생님 덕분에 제 아이가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하고. 그때 당황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나는 임신을 하고 배 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한숨부터 나왔다. 내가 딸이라는 걸 알고 한숨부터 나온 이유는 여자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를 더 단단하게 키우고 싶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가 화도 났고, 남편과 싸우기도 했다. 아이를 좀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는데 페미니즘은 아이가 아닌 내 마음을 꿈틀거리게 했다. 페미니즘은 아이보다 나에게 먼저 필요한 공부였다.
얼마 전 아이 가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너덜너덜한 알림장에 구겨진 가정통신문, 돌봄교실에서 만든 종이접기 등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가방을 보고 인상을 쓰며 ‘여자아이 가방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했다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나! 아직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내 몸에 배어있는 것들이 이렇게 무섭구나.
여자아이라고 해서 깔끔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아이라서 핑크 옷을 좋아하고 치마와 구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아이라서 인형 장난감을 갖고 놀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아이라서 얌전해야 하고 큰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집안일은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다.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집안일은 좀 더 잘하는 사람이, 시간상으로 가능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요리는 무조건 여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등·하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엄마가 조퇴·연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 중 조퇴와 연가를 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남자들이 ‘군대에나 갔다 오고 말해!’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야!’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 오잖아.’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알아?’라는 말에 일목요연하게 반박하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 오해가 생긴다. 오해는 쓸데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그 공포야말로 ‘위험’사상이 된다. “왜?”라고 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문제의식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하루카 요코, 메멘토, 2016, P.102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 다 함께 잘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즘을 ‘위험’ ‘공포’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딸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조화롭게,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나는 조용히 아이 가방의 지퍼를 닫고 아이를 부른다.
“여자아이 가방이 이게 뭐니?”라는 말 대신에 “매일 집에 오면 가방 정리를 하는 것이 좋겠어. 가정통신문, 알림장은 엄마를 보여주고 필통의 연필도 한 번 확인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빼놓고. 할 수 있지?”
내 말에 아이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가방을 열어 야무지게 정리한다.
그래. ‘여자는’ ‘여자라서’라고 시작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그러니 앞으로는 내 아이에게, 또는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여자는’ ‘여자라서’라고 시작되는 말은 사양할게요.
글_모개
현실은 고군분투 워킹맘이지만,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책 내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Mini Interview] 모개
"저는 무엇이 되었든 계속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W매거진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개입니다. 고군분투 워킹맘으로 살고 있지만 엄마로서의 삶만큼 저 모개로서의 삶도 중요하기에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W매거진에 필진으로 참여하고 계신 글에다가님을 통해 2W매거진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글에다가님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매거진을 구입해 읽다가 함께 쓰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제 글이 매거진에 실린 것도 참 행복한 일인데 이렇게 13호 ‘당신의 페미니즘’의 에세이에 선정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글감을 생각하는 과정, 글을 쓰는 과정, 글을 수정하는 과정, 글을 완결하는 그 순간이 다 행복합니다. 하지만 에세이다보니 제 기억과 경험들이 글 속에 담겨 있어 그 때의 기억에 머물다보면 가슴이 아플 때가 있어요. 그래도 글을 완성함으로 그 아픈 마음을 털어내기도 합니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거나 미소 짓게 하는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또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범죄, 스릴러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라 그런 내용의 소설도 쓰고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무엇이 되었든 계속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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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 다 함께 잘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즘을 ‘위험’ ‘공포’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딸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조화롭게,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여자는, 여자라서, 라는 말은 사양할게요’ 모개 님 글 제목처럼 진심 사양하고 싶은 말이다. 무슨 ‘여자’가 죄라도 되는 마냥 ‘여자는~’ ‘여자라서~’ 하고 시작하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발."
"모개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공감했다. 우리는 싸우자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잘 살아가고 싶은 거다.(그 과정 중에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면 그럼, 싸워야겠지만)"
" "'여자는, 여자라서'라고 시작되는 말은 사양할게요."라는 구절이 마음에 쏙 들어왔어요. '여자'라는 꼬리표에 세상에서 갖다 붙이는 기준이 얼마나 많은지요. 저도 앞으로 '여자'라서 강요되는 말은 모두 사양할래요! "
위 작품은 2W매거진 13호 <당신의 페미니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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