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영 <정치적인 식탁> 저자 인터뷰
이 인터뷰는 2W매거진 11호 <어떤 식탁> W클럽 코너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라영 저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식탁이란 어떤 의미일까. 2W매거진 11호의 주제로 글을 쓰고, <정치적인 식탁>을 읽으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필자를 비롯해 W클럽 멤버들 모두 과거의 식탁을 떠올리며 거기에 내재되어 있던 차별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경험도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의문점과 답답함에 대해서, 책의 저자인 이라영 작가가 답을 보내주었다.
인터뷰 진행_홍아미
세상이 기혼 여성에게 쏟아 붓는 ‘밥 타령’
Q. 책을 읽으며 가장 일상적이고 따뜻한 공간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던 식탁이 더없이 정치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상석에 앉은 사람, 당연한 듯 첫술 뜨는 사람,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다 마지막에 앉아 남은 반찬에 밥 먹는 사람…….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영락없는 봉건신분제 사회 같은데요. 식탁이라는 공간에서 이런 서열이 유독 도드라지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일상적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 식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식은 인간의 탐욕성을 자극하기도 하고요. 그 탐욕을 나름 그럴 듯하게 문화로 포장해서 권력행위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한다’ 이런 문화가 있었듯이, 매번 그 자리에서 권력을 확인시키는 것이죠. 가장 일상적인 권력 행위. 반면 여자들은 아예 밥상에 앉지도 못하고 부뚜막에서 먹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서열 확인을 하면서 매순간 권력에 도취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너무도 문화로 자리 잡았기에 이것을 권력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무서운 권력 행위죠.
Q. 작가님께서 식탁에 대해 주목하고 이렇게 분석적인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식탁과 얽힌 차별적인 이야기를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먹는 걸 좋아하니까 주로 어떤 음식이나 식당과 관련한 역사, 이야기 등에 관심이 있었을 뿐인데, 그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니 어느 순간 차별적인 상황이 점점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여자들을 당연히 집에서 식사 노동을 전담하는 사람으로 설정하는 게 무척 거슬렸습니다. 특히 결혼을 하면 여자들에게 온 사회가 밥 타령을 하더군요.
Q. 연령대가 높은 독자들 가운데서는 ‘밥상을 엎’는 행위를 가부장적인 제스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또한 개인적인 폭력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을까요.
밥상을 엎는 행위는 비교적 최근에도 TV 드라마에서 매우 멀쩡한 아버지가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개인적이지 않고 사회 문화적으로 양산하는 폭력 행위입니다. 여성의 성과물을 파괴함으로써 모멸감을 주는 행위죠. 밥을 주로 차리는 여성들은 아무리 화가 나도 밥상을 뒤엎는 일은 잘 하지 않아요. 남은 음식을 여성이 먹도록 하거나, 과거에 여성들에게 젓가락 사용을 못하게 하거나, 밥상이 아닌 부엌에서 먹게 하거나, 여성이 차린 밥상을 걷어차거나, 이 모든 행위는 여성을 동물적으로 대하면서 남성/문명과 구별하여 모욕을 주는 행위라고 봅니다.
음식을 대하는 여성들의 복잡한 심정에 대하여
Q. 한 20대 독자의 경우 ‘나중에 할 때 되면 하게 돼’라고 말씀하시는 양육자 덕분에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에 대한 경험 없이 성장을 했는데 사회에 나온 후 ‘여자는 당연히 요리를 할 줄 알 것이다’라는 생각과 만날 때마다 괴리감과 죄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여전히 요리를 좋아하지도 흥미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압박을 느끼는 젊은 여성들이 어떤 스탠스를 유지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신다면.
저도 더 젊을 때는 요리에 관심 없었어요. 혼자 살게 되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그동안은 엄마와 같이 사니까 요리에 대한 나의 ‘관심없음’이 내 일상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요리에 대한 관심은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앞가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리는 성역할이 아니라 1차적으로는 배고픔을 달래고 나아가 체력 관리와 스스로의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음식을 제공하는 자기 앞가림이죠. 그런데 이 자기 앞가림이 ‘성역할’이 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 앞에서 여성들은 다소 복잡한 입장을 취합니다. 요리를 할 줄 몰라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요리를 좋아하는 자신이 너무 ‘여성성’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제가 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여자라서 당연히 요리를 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은 온 사방에 있어서 그런 말에 신경 쓰다가는 그대로 인생이 끝날 수가 있어서요.
Q. ‘권력자는 남의 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집밥도 같은 의미에서 가정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의 시간을 뺏는 행위로 본다면, 결국 집안에서 무급 노동을 하고 있는 주부의 위치성이 명확해지는데요. 전업주부의 경우 가족구성원들과 어떻게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전업주부 기본소득제라도 만들어진다면 모를까, 현재의 부불노동이 이어지는 상태로는 동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역할로 나눠서 여성이 집안을 돌보고 남성이 돈을 벌어오는 구조는 여성을 계속 남성의 소득에 얽매이게 만드니까요. 저는 개인이 자기 가족과 싸워서 뭔가 바꿀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족 바깥에서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해서 문제를 사회화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정 안에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좋은 엄마, 좋은 아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것이겠죠.
Q. ‘가부장제란 어머니의 밥으로 아버지의 법을 굴러가게 하는 제도다’ 이 문장을 읽고 백배 공감했습니다. 특히 60대 이상 어머니 세대의 경우 남성보다도 더 보수적인 가부장제 옹호자 역할을 하시는 것을 볼 때 답답하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조금은 달라지겠지요, 아주 조금요. 느리게 조금씩이요.
계속해서 함께 목소리를 낸다는 것
Q. 조금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작가님께서는 가정에서 어떻게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식탁과 관련된 집안노동을 어떻게 분배하고 계시는지도요.
전반적인 가사노동은 배우자와 잘 분배가 되어 있어서 혼자 살 때보다 오히려 노동이 줄었고 집안 꼴은 더 나아졌습니다. 딱히 정해놓은 건 아닌데 살다 보니 각자가 더 신경 쓰는 영역이 달라서 자연스럽게 주력하는 분야가 나뉘게 되었습니다. 식사 준비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같이 준비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생각하는 메뉴가 다양하지 않고, 제가 채식을 하기 때문에 메뉴는 아무래도 제가 정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자도 요즘은 집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 줄었습니다.
Q. ‘먹는다는 건 살아있는 나와 죽은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정의가 신선하면서도 와 닿았습니다. 최근 비건에 대한 책도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이 비건 지향적 생활에 영향을 미친 걸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게 연결된 면도 있습니다. 내가 살려고 먹으면서 결국은 누구를 죽이는 것이니까요.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맛과 영양에 머물지 않고 생명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면 오늘날의 환경 문제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고요.
Q. <정치적인 식탁>을 반드시 읽어주었으면 하는 타깃 독자가 있으신가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서 모두가 타깃이 될 수 있겠죠. 밥 하는 역할을 주로 맡은 여성들을 많이 떠올리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밥 받아먹기만 하는 남성들도 계속 겹쳐서 생각했기에 이 주제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책도 결국에는 밥 하는 여성들이 더 많이 읽게 되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요.
Q. 2W에는 가부장제의 부조리함을 몸소 느끼며 글쓰기를 통해 풀어나가려는 여성 독자들이 많습니다. 저희 독자들에게 응원의 한 말씀 부탁합니다.
서로 연결되는 게 많은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든 말하기든, 다른 방식의 표현이든, 계속 함께 목소리 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