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W매거진 15호 <지구와 우리 사이> 이달의 에세이 선정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15호 <지구와 우리 사이>편에 목요일 그녀 님의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너무 많이 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최고의 전략은
버릴 것을 만들지 않는 것.
불필요한 것을 사지 않는 것.
“일주일에 종량제 봉투를 얼마나 쓰세요?”
독서모임 단톡방에 질문을 던졌다.
“4인 가족 기준 10리터 두 장 정도요”
“저흰 4인 기준 20리터 한 장 반?”
“전 애기 기저귀 때문에 좀 나오는 편이에요”
다들 비슷하구나, 안심하려는 찰나 “저흰 4인 기준 10리터 한 장이요” 라는 댓글이 달렸다.
“네에? 진짜요?”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설마, 그게 가능하다고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나 역시 궁금했다. 어떻게 일주일에 4인 가족 쓰레기가 10리터 한 장으로 해결된다는 말인가. “아, 그게 가능하군요. 저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ㅠㅠ” 울고 싶은 마음을 이모티콘에 담아 답글을 달았다.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환경에 대한 경각심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예전보다는 확실히 체감하게 되었지만 체감했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가 무탈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건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거 너무 많다’ 언제부턴가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직해진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나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고, 다시 새 봉투를 꺼낼 때면 버리기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굴게 되는 게 싫었다.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쓰레기가 뭔지 한 번 살펴보시면 어때요?” 답글이 달렸다.
10리터 한 장은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20리터 두 장은 기본이었고, 하루에 20리터 한 장이 가득 채워진 날도 있었다. 지금의 목표는 일주일에 20리터 쓰레기봉투 한 장이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내 돈 주고 산 플라스틱 용기들은 실상 모든 비용을 내가 치른 것이 아니다. 쓰레기봉투를 샀다고 쓰레기에 대한 진짜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았듯 말이다. - 박혜윤, <<숲속의 자본주의자>>,다산북스,2021」
목표를 정했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 하는 작가의 이야기 끝에 나온 문장이었다. 앞 뒤 내용과 상관없이 ‘쓰레기봉투를 샀다고 쓰레기에 대한 진짜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았듯’이라는 문장을 읽는데 ‘아, 이건가’ 싶었다. 20리터 종량제 봉투 한 장은 500원이다. 20장 묶음으로 구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동네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서 한 장 씩 구입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려고 노력하지만, 자주 잊었다. 어차피 필요한데 한 장 사지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돈을 내고 구입했으니 그 안에 무언가를 버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잘 버렸다. 아무데나 버리지 않고 쓰레기봉투에 척척. 먹다 남은 과자봉지도 버렸고, 놀다 망가진 장난감도 버렸고, 코를 푼 휴지도 버렸고, 쓰고 벗은 마스크도 버렸다. 버릴 건 끊임없이 나왔다. 네 살 둘째아이에겐 바닥에 버리지 않고 쓰레기봉투 안에 넣었다고 엄지를 들어올려 ‘최고!’하고 말해주기도 했다. 아마 아이는 엄마의 칭찬 때문에 더 열심히 무언가를 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아이들 눈앞에서 쓰레기봉투를 치우는 것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건, 쓰레기봉투와 나의 눈치게임이야.’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게임에서 이길 전략은 단순하게 세웠다. 그동안 의식 없이 행동했던 나를 잊고 무엇이든 의심할 것. 쓰레기봉투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경계할 것. 다시 보고 또 볼 것. 내가 버린 쓰레기들의 비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 “엄마, 쓰레기봉지 없는데?” 묻는 아이들에게 종이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부터 버릴 건 여기에다 담는 거야.”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꺼내 다시 종량제봉투에 하나씩 확인하면서 담았다. 이거 여기 버려도 되니? 아니니? 혼자 묻기도 했다. 재활용을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이상하게 일반 쓰레기로 분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여기서 저리로 옮겨갈 뿐 쓰레기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눈치만으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아이들이 버린 것 중엔 자잘하게 비슷한 장난감이 많이 보였다. 초콜릿에 들어 있는 스티커나 인형, 딱지, 한번 놀고 버리는 탱탱볼 같은 것들. 내가 버리는 것들 역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사용하지 않거나 줄일 수 있는 물티슈, 화장솜, 포장재로 둘러진 자잘한 소품들이었다. 가끔은 물에 세척해 햇볕에 말리면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도 있었다(이건 아마 귀찮음 때문에 그냥 버리지 않았을까).
‘만약, 사지 않았다면? 장난감을, 물티슈를, 스티커를, 비닐봉투를...’
꽉 채워진 쓰레기봉투를 묶으며 든 생각이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너무 많이 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최고의 전략은 ‘버릴 것을 만들지 않는 것. 불필요한 것을 사지 않는 것. 필요한 것들을 최소화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두 조금씩만 덜 가지면 지구도 그만큼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럼 하늘은 반짝, 맑아지지 않을까.
다시, 전략을 고민한다. 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 그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완벽한 전략을. 나는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까.
글_ 목요일 그녀
오늘 주어지는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읽고, 쓰는 일은 오늘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Mini Interview] 목요일 그녀 작가
"에세이 쓰기는 폴라로이드 사진 같아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목요일그녀입니다. 18년차 직장인, 10년차 엄마로 매일 정신없이 살아요. 다시 태어나면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예윤이와 채민이 두 딸의 엄마는 되고 싶어요. 오늘 주어지는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번 글은 2W매거진에 기고한 열한 번째 글입니다. 11개월 동안 매월 20일 즈음이면 마감이 있는 글을 쓴다는 짜릿함을 경험했어요. 처음엔 2W매거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제가 제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저는 요즘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에 빠져 있어요. 처음엔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필름이 주는 느낌이 좋아요. 에세이를 쓰는 건 폴라로이드 필름이 주는 묘한 매력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날 것 그대로의 저를 마주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건 때론 부끄럽고, 때론 미치게 희열이 느껴지는 일이에요. 저를 둘러싼 두터운 껍질을 스스로 한꺼풀씩 벗겨내는 기쁨, 벗겨진 자리마다 나타나는 선명한 제 민낯을 마주하는 슬픔의 반복이 저를 계속 쓰게 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하고 싶은 말보다 지금 내가 나의 자리에서 꼭 해야 하는 말을 겁내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단단한 문장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제가 쓴 글이 가 닿는 자리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더 없이 기쁠 것 같아요.
필진들의 추천사
"목요일그녀님의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는 쓰레기를 줄이려는 시도를 게임으로 승화시켜 유쾌하게 풀어내어 좋았다."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느끼던 목요일 그녀 님이 쓰레기를 줄여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쓰레기봉투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다시 생각해 보는 지점"
"목요일 그녀 님이 내린 결론에 100% 아니 1000% 공감한다!! 쓰레기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 버릴 것을 애초에 구입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소비를 조장하고 장려하던 문화를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
"환경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실천하고 있지만(다른 필진과 비슷하듯 텀블러 혹은 장바구니 혹은 용기 같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종량제봉투이다. 이 글을 읽고 뜨끔했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일깨워준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집 봉투를 들여다봤다. 음, 나도 혼자 게임을 해봐야 할까?"
위 작품은 2W매거진 15호 <지구와 우리 사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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