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단 하루만 머물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빨강머리 앤이 살던 그린 게이블스, 초록 지붕 집을 찾아갈 것이다.
멀리서 보면 작고 소박한 시골집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햇살, 사과나무, 말이 많은 소녀, 그리고 친구를 기다리는 따뜻한 의자 하나.
그 집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붉은 흙길 끝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을 따라 바람이 불고, 초록 풀밭 위에 흐드러진 꽃들이 앤의 수다를 따라 고개를 흔든다. 그 집엔 유난히 말 많은 소녀가 살고 있다. 허풍도 많고, 실수도 잦지만,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고, 누구보다 상처에 민감한 아이. 나는 그 앤의 곁에 앉아, 다이애나와 함께 작은 찻잔을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쩌면 앤이 내게 이름 대신 ‘영혼의 자매’라는 별명을 붙여줄지도 모른다.
내가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다.
앤이 가진 긍정의 언어들에 나도 물들고 싶어서.
실수해도 괜찮고, 평범한 하루에도 무언가 특별한 뜻이 있다는 그 아이의 시선이, 때론 현실보다 더 진짜 같아서.
현실의 나는 실망을 조심스레 감추고, 감정을 조율하느라 고단하지만, 그 집에서는 “그냥 그렇게 느껴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만 같다.
그린 게이블스는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주는, 상상 속의 쉼표 같은 곳이다. 거기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꺼내놓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은 참, 상상하기 좋은 날씨지 않니?”
그 말 한 줄에
나는 한참을 멈춰서
진짜 오늘의 날씨를,
내 마음의 온도를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어쩌면 인생은,
조금만 더 상상해보면 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