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물결이 출렁이는 해변, 검은색 현무암 위로 부서지는 파도,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와 푸른 하늘 아래 느릿하게 걷는 말들.
내 고향은 제주도다.
요즘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로 더 유명해졌지만, 나에게 제주도는 ‘집’이었다.
그 중에서도 협재와 옹포 사이, 늘 바다를 끼고 살아가던 그 동네에서 나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자랐다.
그러니까, 나는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제주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우와, 수영 잘하시겠어요!”
“회 좋아하시죠?”
나는 늘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수영도 못 하고 회도 못 먹어요.”
그 말엔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일곱 살 여름, 협재 해수욕장에서 이모가 탄 고무보트를 따라 물에 들어갔다가 발이 닿지 않는 순간, 나는 물에 빠졌다.
코로 입으로 짠물이 밀려오고, 허우적거리던 그 짧고 긴 순간 이후로, 나는 물이 무서워졌다.
물가 옆에서 살면서도 바다에 들어간 적은 거의 없었다.
모래사장 끝에 앉아 조개껍데기를 줍거나, 물가 근처에서 맨발만 담그는 정도였다.
바다가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토록 무서웠던 바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생각난다.
서울에서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협재 바다가 떠오른다.
맑고 투명한 물빛,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을 어루만지던 바람.
내가 등을 돌려도,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며 기다려주는 친구처럼.
나는 물을 무서워하지만, 그 물가를 사랑한다.
그곳에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던 바람이 있었고,
혼자서도 괜찮다고 속삭이던 파도 소리가 있었다.
지금도 마음 한켠이 시끄러워질 때면,
나는 조용히 그 바다를 다시 걷는다.
발끝을 적시는 물결처럼,
그곳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