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3층, 309호.
처음 주소가 '제주'가 아니었던 날이었다.
고3까지 줄곧 섬 안에서만 살다가, 서울에 도착했다.
세상은 훨씬 빠르고, 높고,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 모든 속에서 처음 혼자 잠을 자게 되었다.
방 안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룸메이트의 짐 한 켠,
내가 들고 온 캐리어, 그리고 아직 펼치지 못한 이불 보따리.
익숙하지 않은 천장의 불빛은 이상하게 밝았고, 창문 너머로는
처음 듣는 도시의 소리들이 틈을 타고 들어왔다.
엄마는 따로 배웅 오지 않았다.
그건 섭섭해서가 아니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동생이 엄마의 하루를 꽉 채운다는 걸.
그리고 나는, 알아서 잘 해내는 아이였다는 걸.
엄마가 내게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사랑은 항상 ‘기본값’처럼 내 옆에 있었으니까.
택배 상자 안엔 귤 대신 물티슈, 컵라면, 작은 손톱깎이.
그건 엄마가 생각한 실용적인 사랑의 목록이었다.
귤은 없었지만,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말 없는 “잘 해낼 거야”라는 응원을.
불을 끄고, 천장을 보며 누웠다.
눈물이 날 듯도 했지만, 울지 않았다.
그 대신 오래도록 천장을 바라봤다.
낯선 공간에서 보내는 첫 밤은 고요하고, 조금 서늘했지만,
그 안에 내 숨소리와, 아주 작은 용기가 담겨 있었다.
그 밤은 누가 쓰다듬어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게 어른이 되는 첫 걸음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