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렌트카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 그날은 유독 힘든 하루였다.
구마모토에서 출발해 아소 산맥을 넘어가는 길, 갑자기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엔진에서 들리는 소음은 점점 커졌고,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차를 길가에 세웠다.
주변엔 논밭뿐.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렌트카 회사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산간 지역이라 그런지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막막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저 멀리 작은 주유소 간판이 보였다.
차를 밀고 가기엔 너무 멀었지만,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20분쯤 걸었을까. 낡은 간판 아래 작은 주유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미마셍…”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들어서니, 정비복을 입은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계셨다.
나는 어설픈 일본어로 차가 고장 났고, 렌트카이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저씨는 “와카리마시타(알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시곤, 공구상자를 챙겨 함께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다시 차로 향하는 길, 아저씨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셨다.
3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요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 마을이 조용해졌다는 것.
내 일본어 실력에 맞춰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해 주시는 배려에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차를 살펴보시던 아저씨는 “다이조부, 간탄나 슈리(괜찮아요, 간단한 수리예요)”라고 말씀하셨다.
벨트가 조금 느슨해진 것뿐이었다. 10분 남짓 작업을 마치고 엔진을 켜보라 하셨고,
기적처럼 소음은 사라졌다.
“이쿠라데스카?” 수리비를 묻자 아저씨는 손을 내저으며 “다이조부, 다이조부”만 반복하셨다.
대신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가면 된다고 하셨다.
주유소로 돌아와 기름을 채우고 계산을 하려 하자, 그는 커피 한 캔을 건네며 말했다.
“키오츠케테. 조심해서 가요.”
그 순간,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다.
완전히 낯선 외국인인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던 그 마음이
말보다 먼저 닿았고, 그 진심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 이후로 내 여행 방식은 달라졌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유명 관광지보다는 작은 마을의 주유소와 식당을 찾게 되었다.
렌트카 여행의 진짜 묘미는 지도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그 지역을 지날 때면 꼭 연락을 드리고, 주유소에 들른다.
예전엔 손편지를 주고받았고, 요즘은 LINE으로 소소한 안부를 나눈다.
그분은 내가 일본어가 늘었다며 웃어주시고, 나는 그때 받은 커피 캔을 아직도 차 안에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건, 쉽게 버릴 수 없는 한 사람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따뜻함은 여전히 내 여행길에 가장 오래 남는 풍경이다.
낯선 길 위에서 만난 그분은,
지금도 내 마음속 ‘가장 일본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 그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