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시

by 코난의 서재

그날, 나는 부엌 바닥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손에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차가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 국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자꾸 끓어 넘치고 있었다.


몸이 아픈 건 익숙했고,

마음이 버거운 건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유 없이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안간힘으로 붙들던 끈이 조용히 풀려버린 것처럼.

병원에서는 ‘피로 누적’이라는 말만 했다.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동시에 “그만하자” 하고 속삭이는 신호라는 걸.

눈앞이 흐려졌다.

내가 울고 있는 건지,

그저 눈이 시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왔어.”

아들의 목소리였다.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어, 왔어.”

짧은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나를 붙잡았다.


그날, 나는 아주 작게 숨을 돌렸다.

그 후로 조금씩 방식을 바꿨다.

밥을 거르지 않고,

아프면 참지 않고,

하루에 한 번은 아무도 부르지 않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몸이 덜 아프니 마음이 따라 움직였고,

마음이 덜 무너지니 몸이 조금씩 힘을 찾았다.


이제는 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이,

누군가의 다정한 한마디와 함께 찾아올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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