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로 슬라보예 지젝이 있습니다. 동유럽 철학자인 그는 “답을 찾기 전에 문제부터 정의하라”라고 일갈했습니다. 한국 멘사의 일원으로 전 세계 인재들과 교류한 저자 이시환도 유사한 답을 찾은 듯합니다. 지젝은 제대로 정의된 문제 속엔 답이 들어있다는 취지로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문제를 내자마자 해답을 찾으려 부산을 떠는 장면은 수학 문제 풀이에 국한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누구나 답을 찾기에 분주하지만 정작 답 주변 혹은 답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서성이기 일쑤입니다.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한참 뒤에야 문제 자체를 잘못 이해했다는 걸 알아챕니다. 그때라도 늦지 않습니다. 고단한 일이지만 처음으로 돌아가면 되니까요. 가장 큰 문제는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불쑥 머리부터 들이미는 것입니다.
검색의 시대에서 질문의 시대로
이시환은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에서 인재들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질문’에서 찾습니다. 적절한 질문은 현명한 답을 예견합니다. 때에 따라 ‘별해’라는 예상 밖의 성과를 얻기도 합니다. 고교 시절의 일입니다. 수학 정석이나 해법 수학 같은 책으로 수학을 공부하면서 정답으로 가는 길에 여러 갈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후자의 책이 자주 별해를 소개했는데, 단순하게 받아들일 그 별해가 수학에 대한 제 안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정답 란의 풀이 과정 외에 갈래 길을 찾는 즐거움이 수학에 얹힌 후 실력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수학 시험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고도 크게 열광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머리가 덜 자란 그 시절에도 정답으로 가는 길에 단 하나의 길만 놓인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대견했습니다. 문제를 세밀하게 읽어내면 제대로 된 갈래 길에 들어설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만으로 제겐 더할 나위 없는 소득이었습니다. 이후 성년이 되고 사회문제에 천착할 때 그날의 생각들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 모릅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문제에 접근하게 된 것, 그날의 별해에 대한 별스런 생각이 바탕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생각이 창조의 밑그림이라고 하면 매우 어색한가요? 계획 없이 어떤 일을 실행에 옮기는 건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첫 단추인 계획부터 거쳐야 하기 때문이죠. 바로 그 계획의 씨줄이 생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앞서 ‘생각이 창조의 밑그림이라고 하면 매우 어색한가요?’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날줄은 생각에 시간을 들이는 거라고 나름 덧붙여 보았습니다. 학창 시절 경영학 수업 시간에 배운 Plan-Do-See를 배운 적 있습니다.계획-실행(실시)-점검(평가)으로 한역한 경영관리 방식은 매우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습니다. 뚜렷한 목적의식 하에 오가는 생각은 계획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잡다한 생각을 물리치는 데도 대단히 유용하죠.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빈틈없는 생각만으로 이루어질까요?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치이기도 하고 잡다한 생각으로 정신이 산란한 상태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어이없는 판단이나 결정이 반복될 때 일어납니다. 오류가 반복되면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위험성이 그만큼 높게 되겠지요. 극단적인 예로 환청이라는 복병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책, 《생각의 배신》은 부정적인 생각의 폐단을 지적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데 부심합니다.
노력에 앞서 생각에 빠지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 필요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은 물론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생산적일 수 없지요. 부정적인 생각의 또 다른 특징은 기대하지 않은 불안, 우울, 긴장, 분노와 같은 감정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방치하면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릅니다. 그때가 되면 생각에 치인다는 말이 정말 격하게 실감 나죠.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기도 한 저자는 반복되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이 좋은 경과를 보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우울과 불안 등의 증상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생각에 빠지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문제를 바르게 정의하면 오답을 찾을 경우란 많지 않습니다. 섣불리 “생각을 바꾸는 게 어때?”, 라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조언하는 것이 대표적인 오답의 하나일 것입니다. 뇌의 작동 원리를 안다면 그와 같이 답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답에서 벗어난 그런 말들이 사태를 더 악화시킵니다.
결은 다르지만 위 두 책,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와 《생각의 배신》에서 생각의 바탕을 이루는 질문 혹은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경우든 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바른 질문을 거쳐야 한다는 어쩌면 ‘뻔한’ 답을 얻었을지 모릅니다. 기존 지식에서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고 낯설게 읽거나 삐딱하게 읽는 습관을 기르는 건 아주 좋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질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