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

by 안녕 콩코드


때때로 감정은 말이 느리다. 상황은 이미 지나갔고, 사람은 떠났으며, 시간은 한참 흘렀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눈앞의 일들은 정리되었는데, 감정만은 어딘가에 엉켜 해소되지 못한 채 마음속을 떠돌고 있다. 내가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 날들이 있다. 감정은 늘 마지막에 도착하는 손님 같다.


나는 오래도록 내 감정에 서둘렀다. 느끼기도 전에 해석하려 했고, 이유를 묻기도 전에 판단부터 내렸다. 속이 답답하면 얼른 털어버리고 싶었고, 눈물이 나면 그 감정을 지워버리려 애썼다. ‘왜 이러지?’, ‘이건 약한 거야’, ‘이쯤이면 잊을 때도 됐잖아’ 같은 말들이 마음속을 스쳐갔다. 그럴수록 감정은 더 깊이 숨어버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닫아버린 문처럼.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에도 자기 속도가 있을 수 있다고. 어떤 감정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어떤 감정은 머물고, 머물다가 천천히 스며든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성질의 차이일 뿐이었다. 나는 내 안의 감정을 너무 성급하게 몰아세웠는지도 모른다. 아직 말하지 못한 감정을 재촉했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먼저 끝내려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내 감정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들어주는 일’보다 ‘그만하라는 말’이 익숙했고, ‘견디는 법’보다 ‘떨쳐내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건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건 종종 감당하기 벅차고, 또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하니까. 하지만 감정을 무시하고 뛰어넘는다고 해서 마음이 진짜 낫는 건 아니었다. 나는 괜찮은 척 했지만, 속은 여전히 멍들어 있었다.


감정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늘 바쁘고, 감정에는 답이 있어야 하고, 설명이 가능해야 안심된다. 울음은 이유가 있어야 하고, 슬픔은 끝이 보여야 견딜 만하다. 하지만 감정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은 이유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은 채로 오래 남아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어느 날, 차를 마시다 문득 눈물이 났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슬픈 장면을 본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속 어딘가가 문득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그런데 잠시 그대로 머물렀다. 그냥 울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의미도 붙이지 않고.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건 오래전 미처 다 흘려보내지 못한 슬픔이었고, 미뤄둔 마음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감정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종종 그 순간보다 한참 후에 도착한다. 상처받은 줄 몰랐던 상황이 몇 달 뒤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괜찮다고 넘겼던 일이 어떤 날은 통증처럼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때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이제야 도착했구나, 생각한다. 마치 여행에서 돌아와 문득 밀린 편지를 꺼내 읽는 것처럼.


중요한 건 감정을 느끼는 시점이 늦었다고 해서, 그것이 덜 진짜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감정은 더 깊고 솔직하다. 방어도 체면도 다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나오는 진짜 마음.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이었다.


예전에는 감정을 나누는 일이 두려웠다. 내 감정을 말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혹은 너무 유난스럽게 보일까 걱정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웃어넘겼고, 말끝을 흐렸고, 속마음은 삼켰다. 그렇게 쌓인 감정들은 결국 터졌다. 전혀 상관없는 순간에, 엉뚱한 방식으로. 나는 그때 알았다. 감정은 언젠가 반드시 말하고야 만다는 것을. 아무리 눌러도, 아무리 숨겨도. 감정은 결국 자기만의 언어로 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모르겠는 마음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감정은 시간의 언어를 쓴다. 오늘 느끼지 못했다면 내일 느낄 수 있고, 내일 느끼지 못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이 도착했을 때, 내가 그것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감정을 기다리는 일은 나를 기다리는 일과 같다. 나의 언어가 정리되기를, 나의 마음이 제 속도로 풀리기를. 누군가가 나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조용히 건네는 “그래, 그랬구나”라는 말처럼, 나 또한 내 감정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 감정이 말할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 진짜 위로다.


이따금 나는 내가 정말 슬펐던 적이 있었나, 묻게 된다. 바쁘게 살아내느라 감정 하나하나에 머무르지 못한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억, 예고 없이 찾아온 울컥함, 조용한 순간에 가슴이 저미는 느낌이 내게 말해준다. 그때의 나는 분명 슬펐고, 외로웠고, 아팠다고. 그러니 이제라도 괜찮다고. 지금 느껴도 괜찮다고.


감정을 기다리는 일은 삶을 밀어내지 않는 일이다. 어떤 감정은 설명되지 않아도 되며, 어떤 감정은 굳이 닫지 않아도 된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고 해서 내가 덜 자란 건 아니다. 덜 단단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다 말하기까지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그게 내가 조금씩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감정을 기다린다. 모든 걸 알 수 없어도,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말문을 열 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킨다. 그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와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주 조용히, 내 마음이 말할 것이다. ‘지금, 괜찮아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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