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날,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마주하는 자리, 뜻하지 않은 침묵이 감도는 순간.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마음속 어딘가가 간질거리고, 몸속 깊은 곳에서 조용한 진동이 일었다. 불안은 늘 그렇게 찾아왔다. 이름 붙이기도 전에,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미 내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엔 그 감정이 두려웠다. 불안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위축되게 했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불안을 감추고 싶었고, 없애고 싶었고,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낼수록 불안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외면할수록 커지고, 감추려 할수록 도드라졌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불안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불안을 직면하기 시작한 건, 한 번 크게 무너진 날 이후였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믿었던 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흔들렸고, 그날의 실패는 나를 뿌리째 흔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끝자락에서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실패는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동시에 숨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불안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불안은 언제나 어떤 가능성의 그림자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바람이 너무 커질 때, 불안은 생겼다. 불안은 어쩌면,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불안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지금, 무엇을 그렇게 바라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떨리게 만드는지.
어느 날은 그저 불안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여전히 힘들었다. 가슴이 조여오고, 손끝이 차가워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각도 점점 잦아들었다. 불안은 폭풍처럼 몰아치기보다는, 흐린 날의 바람처럼 지나가기도 하는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불안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보다, 함께 있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 감정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나에게 조금 더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지금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워. 꼭 이겨내지 않아도 돼. 그냥 같이 있어주자고. 그렇게 불안을 대하는 말투가 달라지자, 내 안의 긴장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어느 봄날 산책 중이었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아름다움 앞에서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에도 나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할까. 하지만 바로 그 불안이, 그 순간을 더 귀하게 느끼게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것들이기에, 우리는 더 조심스럽고 더 간절해진다. 불안은 삶을 더 섬세하게 살아가게 만든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루어지는 감정이다. 마치 수면 위에 떠 있는 연처럼, 그것을 억지로 가라앉히려 하면 오히려 더 요동친다. 대신 바람의 결을 살피고, 줄을 천천히 조절하듯이 불안의 리듬을 느끼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에게 맞는 거리로.
불안을 감추지 않고, 불안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처음엔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 불안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손길 하나가 나를 얼마나 안도하게 했는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다른 이의 불안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본다. 나와 같은 속도로 떨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조용히 말해준다. 괜찮다고, 그 마음 안다고.
나는 이제 불안을 환영하지는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불안이 나를 찾아올 때면, 그 감정을 감추기보다 받아들이고, 억누르기보다 함께 앉는다. 불안은 여전히 나를 흔들지만, 동시에 나를 더 깊이 있게 만든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닿고 싶은지를 더 분명히 알아간다.
불안은 나를 약하게 만들기보다,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 흔들리지 않고 싶은 바람, 그것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은 존재인지 말해준다. 그 바람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진솔해진다.
오늘도 불안은 나와 함께 있다. 문득 찾아온 마음의 떨림, 예고 없는 두근거림.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안고 하루를 걷는다. 피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그 감정을 온전히 살아낸다. 불안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이 조용한 동행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