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by 안녕 콩코드


가끔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똑같은 고민을 되풀이하고, 다짐은 늘 작심삼일로 끝나고, 어제의 후회가 오늘도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서툴고, 스스로에게조차 확신이 없을 때, 나는 내가 과연 나아지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묻게 된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예전엔 그토록 휘둘리던 말에 이제는 잠시 멈칫할 뿐이고, 한때는 끝이라 느껴졌던 일도 언젠가 지나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마음도, 아주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우리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속도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버스를 놓치고 빗속을 걷던 날이 있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려던 그 순간, 나는 문득 우산을 들지 않고 걷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젖은 머리칼을 털며 웃는 그 모습에 이유 없이 마음이 풀렸다. 별일 아닌 장면이었지만, 나는 그때 알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예전 같으면 짜증과 불만으로 하루를 채웠겠지만, 그날은 그저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하루를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매일 실망하고 다치고 다시 일어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같은 말에 또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시도한다. 아주 작은 변화들, 이를테면 감정을 꾹 눌러두기보다 조용히 기록하기, 다투고 돌아선 후에도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네보기, 나 자신을 미워하는 대신 이유를 묻기.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변화는 거창한 결심보다, 매일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사소한 의지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자책의 언어 대신 위로를 택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에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며, 말 대신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어느 날 우리는 전보다 덜 흔들리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종종 그런 순간을 기억하려 애쓴다. 스스로 실망스러웠던 날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나, 혼란스러운 감정을 글로 써내려가며 정리했던 밤, 아무도 몰랐지만 치열하게 하루를 견뎌낸 어느 오후. 그런 나날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다시 오늘의 나를 지탱한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은 완벽해진다는 말이 아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도, 늘 잘 버티겠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 더 이해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데 들이던 힘을 이제는 보듬는 데 쓰기로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구나 조금씩 자라고 있다. 눈에 띄지 않아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변화는 우리 안에서 묵묵히 자라고 있다. 그러니 너무 자주 조급해하지 않기로 하자. 더디다고 해서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깊은 변화는 언제나 느리게 찾아왔다. 가장 중요한 감정은 말보다 먼저 마음속에서 길러졌다.


오늘도 마음이 흔들렸다면, 그 또한 괜찮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다시 잡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것이면 된다.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다정하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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