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괜찮은 척’의 습관

by 안녕 콩코드


나는 종종, 아니 어쩌면 늘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았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웃었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대꾸하지 않았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그 순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괜찮아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같은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입에서 나온 그 말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울면 지는 거야”, “그 정도는 참고 넘겨야지”, “남들은 더 힘들어” 같은 말들 사이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곧 ‘약함’으로 여겨졌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점점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해졌다. 울고 싶어도 참았고, 화가 나도 웃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말로 꺼내는 대신, 혼자서 끌어안고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괜찮은 척을 하면, 덜 복잡할 줄 알았다. 갈등을 피할 수 있고, 누군가의 비난도 덜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괜찮은 척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점점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 어딘가에 쌓였다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왔다. 사소한 말에 울컥하거나, 전혀 관계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었고,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렵고, 외롭고 지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런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오랜 시간,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민폐라 느껴지지 않게, 늘 착하고 배려심 있는 모습으로. 하지만 그런 태도는 결국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없었고, 점점 고립되어 갔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오랜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무심코 “요즘 괜찮아”라고 말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문득 서러워졌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털어놓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정작 그걸 스스로 막아버렸다는 사실이 더 외로웠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기회는 있었지만, 내가 스스로 그 문을 닫은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은지, 지금 마음은 어떤지, 억지로 숨기고 있는 건 없는지. 그 질문을 던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것을 허락하는 것 사이엔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감정은 느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는 여전히 주저했다. 특히 타인 앞에서 더 그랬다. 감정을 나누는 것이 상처로 되돌아온 경험들이 쌓여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아주 조금씩 연습했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일,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는 일,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를 내는 일. 처음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감정적인 사람이라 여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런 나의 솔직함을 조용히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내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연결은 ‘괜찮은 척’이 아니라, 솔직함 위에 놓여 있다는 걸.


‘괜찮은 척’은 방어였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얇고 단단한 갑옷. 하지만 그 갑옷은 점점 내 안쪽을 조이기 시작했다. 감정을 숨길수록 나는 외로워졌고,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다. 그게 때로는 무표정일 수도 있고, 과한 밝음일 수도 있고, 지나친 침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그 안에는 상처 입지 않기 위한 방어가 숨어 있다. 나는 이제 그런 나를 이해하려 한다.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시선으로.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요즘 어때?”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그 말이 내 마음과 다를 때는 이제 조용히 다른 말을 꺼내본다. “사실 좀 힘들어”라고. 그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숨이 트이고, 마음이 풀린다는 걸.


나를 괴롭히는 건, 늘 남이 아니었다. ‘괜찮은 척’이라는, 내 안의 작은 습관이 더 큰 고통이 되곤 했다. 진심을 감추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감추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정말 가까워지고 싶다면, 먼저 내 마음을 꺼내 보여야 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을 건넨다는 건 용기이고, 그 용기야말로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이제는 괜찮은 척보다는 진짜 괜찮아지기 위한 삶을 살고 싶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안고 가는 사람.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에게 “괜찮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회복의 첫 문장이라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어느 날은 웃고 있지만, 또 어떤 날은 말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더는 억지로 나를 괜찮게 만들지 않는다. 내 감정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작은 숨을 고른다. 언젠가 ‘괜찮지 않았던 날들’도 나를 만들었노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를 살피고 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 괜찮아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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