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멈추는 일을 두려워했다. 한 걸음이라도 쉬면, 그 사이에 무언가를 놓칠까 봐. 마음은 늘 움직였고, 머리는 언제나 바쁘게 일했다. 해야 할 일, 챙겨야 할 사람, 준비해야 할 내일. 조금만 느슨해지면 어딘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늘 긴장을 쥐고 살았다. 잠깐 웃다가도 금세 정신을 차렸고, 조금 여유를 느껴도 이내 불안이 밀려왔다.
쉬는 일은 왠지 죄스러웠다. ‘이렇게 있어도 되나’, ‘지금 쉬면 나중에 더 힘들 거야’ 같은 말들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멈추지 못했고, 눈은 감겨도 생각은 계속 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를 향해 말했다. 아직은 안 된다고. 지금은 버텨야 한다고. 조금만 더 견디자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은 멀쩡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머리는 평소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아침이 와도 눈을 뜨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대화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아무 일도 아닐 작은 피로였는데, 그날은 달랐다. 마음이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멈춰야겠다고, 이제는 진짜 쉬어야겠다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마음에도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몸을 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오랜 시간 무리한 감정노동, 억눌러온 감정들, 해소되지 못한 마음의 피로가 쌓이고 쌓여 결국 마음도 탈이 난 것이었다. 나는 마음의 휴식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마음은 언제나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도 지친다. 생각에 쫓기고, 감정에 치이고, 상처를 입으면 마음도 숨이 찬다.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고,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마음은 언젠가 무너진다. 그 무너짐은 눈에 띄지 않게 다가온다. 평소와 같은 일상 속에서 느닷없이 터지고, 가장 익숙한 순간에 조용히 무너진다. 나는 그런 무너짐을 몇 번이고 겪으며 겨우 알게 되었다. 마음도 쉬어야 산다는 것을.
처음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 나는 그런 감정들과 싸워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그토록 어렵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게는 그저 ‘멍하니 있는 일’이, 사실은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워야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자주 건넸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엔 위로 같았지만, 곧 허락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 말을 통해서야 나는 비로소 쉴 수 있었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며 산다. 열심히 살라는 말은 들었지만, 충분히 쉬어도 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쉬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마음을 쉬게 하는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나는, 그 자체가 이유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배웠다.
마음의 휴식이란 멀리 떠나거나,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때로는 조용히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눈을 감고 창밖의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풀렸다.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 라디오를 켜고 느리게 흘러가는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굳어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마음의 쉼은 아주 작은 틈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내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였다. 지쳤다고 말하면 약한 사람이 될까 봐, 울고 싶다고 하면 불편한 사람이 될까 봐, 나는 감정을 속이고 외면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많은 소음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 안에서 자꾸 길을 잃었다. 나중에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마음이 멈추지 않으니, 아무리 누워 있어도 피곤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감정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밀려오던 밤이었다.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덮지 않고, 그냥 따라가 보았다. 외로움은 결국 ‘내가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에서 왔다. 나는 그 감정을 통해 나의 결핍을 보았고, 나의 바람을 들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마음이 쉬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피곤할 때,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나는 먼저 이렇게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니?” 그 질문을 마음에게 던지고 가만히 기다리면, 어쩌면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오르고, 눈치 보며 삼킨 말이 스쳐간다. 그 기억을 붙잡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덜 아프다.
마음의 쉼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다. 마음의 쉼은 다시 괜찮아지려는 노력조차 멈추는 시간이다. 아무런 성과도 없는 채, 그저 살아 있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한 순간.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는 다시 나를 믿게 된다. 회복은 성장이 아니라 회복일 뿐이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새롭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너졌던 마음이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런 날이 있다. 아침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들어오는 날.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날. 그런 순간에 문득 마음이 말했다. “지금, 괜찮다”고. 그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붙잡아주는지 모른다. 마음의 휴식이란, 그 말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떤 외부의 위로나 성취가 아니라, 마음 스스로 건네는 고요한 확신 같은.
나는 이제 마음을 돌보는 일에 인색하지 않기로 했다. 바쁘게 살았던 시간도 소중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건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고, 다시 웃을 수 있었다. 마음이 숨을 쉴 수 있어야, 삶도 숨을 쉴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잠시 멈춘다.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 조용히 쉬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되뇐다.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지금, 나는 어쩌면 더 잘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