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주지 않기보다, 받지 않는 쪽을 택한다

by 안녕 콩코드


우리는 흔히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다정하고, 사려 깊고,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라 배워왔다. 나 역시 그랬다. 말조심을 했고, 표정을 신경 썼고, 내 감정보다 남의 기분을 먼저 살폈다. 혹시라도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아픔이 될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하지만 그 노력은 언제부턴가 내 안에서 다른 아픔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상처 주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나는 더 자주 상처받고 있었다. 누군가의 날 선 말에 입을 닫았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웃으며 넘겼다. 갈등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 침묵이 내 안의 감정을 갉아먹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다가,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처받지 않으려면 상처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언제나 거칠고 차가운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고의로 상처를 주라는 말이 아니라, 상처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 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즉, 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 이전에, 먼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이제 나는 다르게 선택한다. 상처를 주지 않기보다, 상처를 받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 선택이 때로는 차가워 보일 수도 있고, 무관심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걸. 그 선택의 무게를 너무 잘 알기에, 나는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더 진심으로 관계에 임한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나를 부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나는 조용히 멀어지기로 한다. 단절이 아니라, 회피가 아니라, 자기 보호라는 이름의 퇴장이다.


어릴 적에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 말은 이타심의 미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너 자신은 나중에 생각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감정이 상해도, 억울해도, 서운해도, 늘 나중에 말해야 했고, 대개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관계가 어긋나는 걸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내 쪽이 물러났고, 내 쪽이 참았다. 하지만 그 관계는 이상하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를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가볍게 다루게 된다. 내가 내 경계를 설명하지 않으면, 상대는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지 모른다. 그렇게 무너진 경계 안에서 나는 늘 불편했고, 관계는 점점 왜곡되었다. 결국 무너지는 건 관계가 아니라 나였다.


경계를 그리는 일은 미움받을 용기를 필요로 한다. 거절하는 것,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 때로는 선을 긋는 일. 이런 모든 일들은 ‘좋은 사람’의 반대말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오히려 명확한 경계가 있어야 관계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나의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려면, 먼저 내 마음의 공간이 편안해야 한다.


나는 이제 누군가가 나의 선을 넘을 때, 예전처럼 웃으며 넘기지 않는다. 차분히, 그러나 분명히 말하려 한다. “그건 내가 불편해.” “나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어.” 그 말을 꺼낼 때마다, 여전히 떨리고 겁이 난다. 관계가 끊길까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말한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침묵하던 내가, 결국 내 안을 병들게 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처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람 사이에 살고 있는 이상, 마음은 자주 부딪히고, 엉키고, 때론 어긋난다. 중요한 건, 그 상처 속에서도 내가 나를 먼저 돌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비하하는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상대의 무례함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것이 진짜 성숙이라는 걸 나는 배워가는 중이다.


상처는 의외로 가벼운 순간에 깊게 남는다. 무심코 뱉은 말 한 줄, 지나가는 표정 하나, 회피되는 대화. 그 안에 내 존재가 무시당했다는 감각이 남으면 오래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보다 감정에 반응하려 한다. 상대가 어떤 말을 했든,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 진짜다. 그 감정을 인정하고,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다.


나는 관계 안에서 책임을 지나치게 짊어지려 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내가 조금 더 참으면 괜찮을 거라고, 내가 사과하면 관계가 회복될 거라고 믿었던 순간들. 그러나 그 모든 관계는 결국 나만을 탓하게 만들었다. 한쪽이 너무 많이 참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 관계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선택이었다.


지금 나는 관계를 맺을 때 이런 질문을 한다.

이 관계는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는가?

이 사람 앞에서 나는 나답게 말할 수 있는가?

이 만남 이후 나는 더 편안해지는가?

이 질문에 선명하게 “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그 관계를 이어간다. 그게 아니라면 조용히 거리를 둔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는 쪽을 택하는 방식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게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나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나는 내가 나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기대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안전지대까지 침범할 권리까지 가진 건 아니다. 나는 그 경계를 지키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더 이상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놓치지 않는다. 대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정중히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단단함이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나는 이제 그런 방식으로 나를 지키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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