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서술자』 – 세계 속을 걷는 심층 체험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

by 안녕 콩코드


길 위의 아이와 햇살

길가에 앉아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작은 손은 무심히 먼지를 쓸고, 햇살은 벽돌 틈새를 비추며 그의 머리칼 끝을 은은하게 감싼다. 아이의 눈동자 속 두려움과 호기심이 어른거린다. 서술자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의 혼란과 떨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독자가 그 숨결과 긴장까지 느끼도록 내어준다. 걸음을 멈춘 화자의 호흡과, 바람에 스치는 먼지조차 존재의 맥박으로 연결된다. “아이의 두려움 속에서도 삶의 맥박은 느껴진다.”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다정함이 서사의 구조로 구현되는 순간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오래된 벽돌과 낡은 가로등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먼지 냄새와 먼 발걸음의 울림이 뒤섞인다. 골목 끝에서 마주친 노인의 눈빛, 길가에 놓인 버려진 신발, 바람에 흔들리는 쓰레기봉투까지, 모든 것이 서로에게 연결된 세계의 조각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현재와 과거, 기억과 상상이 한 화면 위에서 겹쳐진다. 독자는 골목을 걷는 것처럼 서사를 따라가며, 세계 속의 작은 결들을 감각한다.


숲 속의 정적과 숨 쉬는 존재

숲 속에서 화자는 조용히 멈춘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 바람에 스치는 가지의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모두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인물은 숲을 관찰하지만, 화자는 숲과 인물, 그 사이의 정적까지 기록한다. “숲은 말을 하지 않지만, 존재는 숨을 쉰다.” 독자는 숲 속에서 자신을 잃고 찾으며, 존재와 시간,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체험한다.


도시의 골목과 대비되는 숲의 고요함 속에서, 화자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히 읽는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 물 흐르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인물의 감정과 연결된다. 화자는 판단하지 않고, 단지 기록한다. 독자는 그 기록 속에서 존재의 결을 느끼며, 읽는 행위 자체가 다정한 체험이 된다.


인물의 내면과 무언의 교감

화자의 시선 아래 인물들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정한 서술자는 인물의 불완전함과 모순을 그대로 감각하며, 독자가 여백까지 체험하도록 안내한다.


한 장면에서 두 인물이 서로를 바라본다. 말은 거의 없지만, 눈빛과 손짓, 숨결만으로 교감이 이루어진다. 서술자는 판단하지 않고 기록한다. “그들의 침묵 속에는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독자는 단어 하나, 표정 하나까지 따라가며 사랑과 연민의 다층적 의미를 느낀다.


노인이 오래된 책을 들여다보는 장면. 책장 먼지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묘한 온도를 만들고, 그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는 듯 보인다. 화자는 그의 호흡과 눈빛, 손짓까지 기록하며, 독자가 시간의 층위를 감각하도록 한다. 서술자는 인물과 세계 사이의 공간을 촘촘히 엮는다.


기억과 시간, 과거의 숨결

『다정한 서술자』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 과거 회상과 현재 경험, 상상적 장면이 겹치며, 독자는 시간의 흐름을 감각한다.


화자는 오래된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 인물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눈빛과 미소는 여전히 살아 있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있다.” 독자는 사진을 들여다보듯 과거의 순간을 체험하며, 기억과 존재의 연결을 느낀다.


역사적 사건과 개인적 경험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화자는 사회적 맥락을 인간적 연민 속에 녹여낸다. 전쟁의 흔적, 이주민의 발걸음, 사회적 변화가 인물의 감정과 맞물리며, 다정한 서술자는 이를 판단 없이 감각적으로 기록한다. 독자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인간적 연민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동시에 체험한다.


언어와 문체: 숨 쉬는 서사

토카르추크의 문장은 다정함을 구현하는 도구다. 판단 대신 가능성과 연결을 강조하며, 독자가 사고와 감정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한다.


“길 위의 먼지는 기억을 담고, 발걸음은 그것을 풀어낸다.”

“바람이 스치는 잎사귀는 한 사람의 고독과 닮아 있었다.”


반복과 리듬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독자는 문장 속에서 숨 쉬듯 서사를 체험한다. 문장은 장면을 그리는 동시에 독자의 존재 참여를 유도하며, 읽는 행위 자체가 다정한 경험이 된다.


존재, 죽음, 삶의 결

죽음과 삶, 부재와 존재가 교차하는 순간에서 다정함은 선명해진다. 오래된 집터를 지나며 바람에 스치는 먼지를 바라보는 인물.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미 떠났지만, 화자는 그 공허를 판단하지 않고 존재의 흔적으로 기록한다. “사라진 것 속에서도 삶은 숨 쉬고 있었다.” 독자는 존재와 부재,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감각하며, 삶의 다층적 결을 체험한다.


작은 사건에서도 존재의 무게는 느껴진다. 소녀가 강가에서 돌을 튕기며 웃는다. 단순한 행동이지만, 화자는 이를 삶과 연결하며, 독자는 그 순간을 살아가는 감각을 공유한다.


다정함의 철학

『다정한 서술자』는 인간과 세계를 포용적으로 관찰하며, 독자가 이를 체험하도록 안내하는 문학적 실험이다.


다정한 관찰: 판단하지 않고 존재를 기록, 인물과 세계의 결을 느끼게 함

감각적 서사: 공간, 시간, 사건, 인물, 자연이 촘촘히 연결되어 독자가 체험

문체의 다정함: 반복과 리듬, 섬세한 묘사로 독자가 서사 속을 숨 쉬며 걷도록 함

철학적 깊이: 사랑, 연민, 존재, 죽음, 기억과 역사 등 삶의 다층적 의미 전달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읽는 행위 자체를 다정한 경험으로 만드는 장치다. 독자는 서술자의 시선을 따라 세계를 감각하며, 존재와 관계를 사유한다.


* 표제 사진은 저자 올가 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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