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선 안 되는 것들-언어로 호명될 수 없는 주제들

by 콩코드


말할 수 없는 것들의 그림자

“그건 말하지 않는 게 좋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이런 경고를 듣는다. 정치적 견해, 성적 지향, 계급 문제, 심지어 가족 내부의 갈등까지. 어떤 것은 법과 제도로, 어떤 것은 관습과 시선으로, 또 어떤 것은 단지 ‘눈치’라는 이름으로 봉인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예의의 차원을 넘어선다. 사회는 늘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 왔다. 금기의 언어를 설정함으로써 사회는 안정과 질서를 확보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침묵 속으로 밀려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목소리를 빼앗긴다.


이 글은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주제들, 즉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힘과 개인 내면의 긴장을 살펴보기 위한 시도이다.


금기의 언어 – ‘없는 것처럼’ 만드는 힘

금기의 가장 무서운 힘은 어떤 주제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오랫동안 말해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피해자들은 침묵 속에 머물렀고, 공동체는 이를 은폐하며 겉보기의 평화를 유지했다.


이 침묵은 두 겹의 효과를 낳는다.

첫째,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고립된다.

둘째, 사회는 불편한 현실을 ‘없는 문제’로 치부하며 변화를 미룬다.


금기는 단순히 말을 막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는 장치다.


‘중립’의 요구 – 정치적 침묵의 형식

오늘날 또 다른 금기는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정치 얘기는 하지 마라.”, “나는 중립이야.”라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갈등을 피하는 안전한 태도로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정치적인 발화일 수 있다.


중립은 결코 무심한 자리가 아니다. 이미 다수 권력이 점유한 질서를 그대로 두는 순간, ‘중립’은 기존 권력 구조를 묵인하는 편향적 선택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불거졌을 때, 많은 이들이 “나는 중립이다”라고 선언했지만, 그 중립은 사실상 현 상태를 지지하는 정치적 행위였다.


결국, 중립은 비정치적 가면을 쓴 정치적 입장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역시 발화이며, 침묵 또한 강력한 표현의 한 형태가 된다.


언어화되지 않는 고통 – 이름 없는 현실들

언어는 존재를 드러내는 통로다. 하지만 언어가 부재할 때, 현실은 쉽게 지워진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해 고통받았지만, 그들의 불편은 공적 언어로 호명되지 않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는 것은 곧 사회가 그 문제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존재와 권리의 조건이 된다.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은 곧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금기를 깨뜨린 목소리들

그렇다면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투 운동은 그 대표적 사례다. 수많은 여성들이 금기를 깨고 “나도 피해자였다”라고 말하면서, 사회는 침묵 속에 가려진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고 격렬했지만, 동시에 언어의 힘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슷하게,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 역시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는 행위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지만, 침묵을 깨고 자신을 드러낸 사람들의 용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던 삶을 사회 앞에 세웠다.


금기를 깨는 말하기는 개인에게 위험하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를 확장시키는 힘을 갖는다.


심층 공부를 위한 이야기

말해선 안 되는 것을 탐구하는 일은 단순히 금기를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권력,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공부다.


철학적으로, 미셸 푸코는 권력이 단순히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규정함으로써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금기는 권력의 가장 미묘한 장치다.


문학적으로, 아드리엔 리치는 “침묵을 깨는 용기”를 강조했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끌어올리는 일이 저항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사회적으로, 금기를 깨뜨리는 집단적 발화가 민주주의의 확장을 이끌어 왔다. 여성의 참정권, 노동자의 권리, 성소수자의 존재 인정 모두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한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을 공부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사회의 언어적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작업이다.


금기의 언어를 넘어

우리는 흔히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 왔다. 그러나 침묵은 언제나 덕목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은 금기의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을 직면하는 일은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표면의 평화 뒤에 감춰진 긴장과 억압을 볼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갈등 없는 침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언어로 꺼내고 서로의 차이를 마주할 때 가능하다.


결국,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을 말하는 일은 사회의 금기를 넘어서는 동시에, 개인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길이기도 하다. 금기의 언어를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더 넓은 세계와 더 깊은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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