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평균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우리는 ‘평균’이라는 단어에 너무 익숙하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잣대처럼 보인다. 학교 성적을 평가할 때도, 정책을 세울 때도, 사회적 기준을 정할 때도 평균이 기준이 된다. 다수의 삶을 포괄하는 듯 보이기에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평균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기준은 특정 집단의 경험을 보편화한 결과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삶과 목소리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평균이 ‘정상’을 규정하는 순간, 그 바깥에 선 사람들은 곧 ‘비정상’이 된다.
평균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평균은 숫자의 권위를 두르고 나타난다. 평균 키, 평균 수입, 평균 점수, 평균 수명. 단순화된 결과에 불과한데도, 사람들은 이를 객관적 진실로 받아들인다.
“한국 남성 평균 키는 174cm”라는 말은 곧 ‘남성이라면 최소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동한다. 숫자는 근거 없는 자격증명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히고, 그 기준은 곧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든다.
평균은 다수의 경험을 ‘보편’으로 치환한다. 정부 정책 속 ‘보통 가구’는 대체로 맞벌이 부부와 두 자녀로 설정된다. 그러나 한부모 가정, 1인 가구, 동거 가구는 언제나 ‘예외’로 분류된다.
제도는 ‘평균적 가정’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그 밖의 삶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다. 다수의 삶은 ‘보편’이 되고, 소수의 삶은 ‘특수’로 축소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사회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진다.
평균은 ‘정상’이라는 말을 낳는다. 정상 체중, 정상 혈압, 정상 가족. 이는 곧 ‘평균 범주 안에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평균에서 벗어난 이는 곧바로 ‘비정상’으로 불린다.
학교에서 평균 학업 성취도를 기준으로 학생을 분류하면, 평균 미만의 아이는 ‘부진아’가 된다. 이 낙인은 단순한 분류를 넘어 아이의 자존감과 미래를 제약하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동한다.
교육 ― 줄 세우기의 도구
한국 교육은 평균 성적에 대한 집착이 유난하다. 학급 평균, 학교 평균, 전국 평균. 학부모와 교사는 이를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학원은 “평균보다 몇 점 높음”을 광고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별 학생의 재능과 속도는 존중받지 못한다. 수학이 약해도 그림에 뛰어난 아이, 영어가 서툴러도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평균’이라는 잣대 앞에서 늘 부족한 학생으로 남는다.
직장 ― 평균 이하의 낙인
직장에서도 평균은 숨어 있다. 성과 평가에서 ‘평균 이상’은 칭찬이지만, ‘평균 이하’는 무능의 딱지가 된다. 개인의 상황과 맥락은 고려되지 않고, 모두가 같은 줄 위에 서야 한다.
특히 장시간 노동 문화 속에서는 “평균적으로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한다. 이는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무시한 폭력이다.
문화적 규범 ― 평균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삶
외모, 결혼, 출산, 주거 등에서도 평균은 규범이 된다. ‘결혼 적령기’, ‘평균 집값 대비 소득’, ‘평균 체중’ 같은 말들은 개인의 선택을 조용히 제한한다. 평균에서 벗어난 이들에게는 늘 “늦었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평균은 비교를 낳고, 비교는 자기 검열을 만든다.
“나는 다른 길을 가도 괜찮을까?”
“평균보다 낮으면 무능해 보이지 않을까?”
“평균에서 벗어나면 소외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스스로의 욕구와 개성을 숨기고, 평균에 맞추어 살아간다. 대학 입시에서 표준점수와 등급 중심의 평가, 직장에서 ‘평균 근무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관행은 모두 다양성을 억압하는 구조다.
평균의 폭력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평균 너머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학교는 점수 중심 대신 개별적 피드백과 다양한 학습 경로를 존중해야 한다.
직장은 성과뿐 아니라 창의성과 협업을 평가해야 한다.
사회는 평균적 기대에 맞지 않은 삶을 존중하고, 제도로 수용해야 한다.
평균은 다수의 기준, 곧 권력의 표현이다. 평균 너머의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다양성과 소수의 목소리가 존중받는다.
우리의 삶은 학업, 직장, 외모, 관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평균과 비교된다. 그러나 평균은 편향된 기준일 수 있으며, 소수를 지워버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평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교의 잣대를 달리 두는 것이다. 평균이 아니라 각자의 맥락을 존중할 때, 삶은 더 자유롭고 다채로워진다.
진정한 포용은 평균을 넘어, 비교와 평가가 아닌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된다. 소수의 삶과 다른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에서야 우리는 평균의 폭력에서 벗어나, 모두가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다.
더 읽어볼 만한 책들
토머스 핀천, 《중력의 무지개 (Gravity’s Rainbow》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적 실험 소설로, 전쟁·과학·권력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통제되고 분류되는지를 탐구한다. ‘평균적 인간상’에 맞추려는 사회의 집단적 폭력이 어떻게 개인을 압도하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숫자와 통계가 개인을 관리하는 도구가 되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드러낸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안과 고독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균적인 삶’에 자신을 맞추며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프롬은 이 과정을 분석하면서, 평균이라는 집단적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자유를 갉아먹는 심리적 메커니즘임을 보여준다.
한국 교육평가연구소 연구 보고서 (학업 성취도 평균과 창의성)
다수 학생의 ‘평균 성취도’를 기준으로 교육정책을 설계할 때, 창의성과 다양성이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분석한다. 학업 성취도 평균이 높을수록 학생 개별의 흥미와 능력은 무시되기 쉽다는 실증적 데이터를 제공한다. 평균에 의존한 교육의 폭력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조직문화 관련 논문들 (성과평가와 자기 검열)
기업에서 성과평가 제도를 운영할 때, 평균을 기준으로 한 상대평가가 개인에게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현상을 다룬다. 평균보다 낮으면 ‘무능’, 평균 이상이면 ‘충분’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창의적 시도를 가로막고 조직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평균의 문제는 단순한 통계학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문화, 권력과 심리에 얽힌 문제다. 평균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