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유로울까?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집어 들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음악을 들으며 뉴스와 SNS를 훑는다. 점심 메뉴는 배달 앱에서 ‘오늘의 추천’을 참고해 고르고, 퇴근 후엔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드라마 한 편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자유의 시대다. 무엇을 보고, 먹고, 소비할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혹시 이런 생각이 스친 적은 없는가?
“왜 내가 고르는 것들이 늘 비슷할까?”
“내가 좋아한다고 믿는 취향, 사실 누군가가 미리 짜놓은 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벽이 있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 벽은 점점 두꺼워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투명한 감옥이다. 쇠창살도, 자물쇠도 없지만 사람들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장치 말이다.
보이지 않는 눈 – 판옵티콘 이야기
18세기, 한 철학자가 기발한 감옥 설계도를 내놨다. 중앙에 감시탑을 세우고, 그 주위를 원형으로 감방을 배치한 구조였다.
중앙의 감시자는 수감자들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자신이 지금 감시받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 결과 수감자는 “언제나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믿게 되고,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이게 바로 미셸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판옵티콘이 훨씬 교묘한 모습으로 작동한다. CCTV, 위치 추적, 인터넷 기록 같은 기술이 우리를 감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감시’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거야.”
“편리하게 쓰는데 뭐가 문제야?”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그 시스템을 받아들인다.
결국 감옥의 간수는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스마트폰이 만든 작은 감옥
스마트폰은 투명한 감옥의 가장 대표적인 장치다.
우리가 검색하고, 쇼핑하고, 클릭하는 모든 기록은 데이터가 된다. 이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되고, 그 결과로 우리가 볼 콘텐츠와 광고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에서 ‘오늘의 추천’을 클릭했다고 해보자. 그 상품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걸까? 아니면 플랫폼이 보여주고 싶은 걸까?
우리는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이끌린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투명한 벽 안에서 방향을 돌려가며 움직이는 햄스터 같다. 자유롭게 달린다고 믿지만, 그 원통 밖으로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두려움과 행복, 감옥의 연료
사라 아메드라는 학자는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사람들은 감정을 통해 움직인다. 그리고 권력은 바로 그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범죄 소식이 쏟아질수록 사람들은 CCTV 설치를 환영하게 된다.
“우리 동네도 카메라 더 늘려야 해!”
하지만 그 CCTV가 우리의 행동까지 기록한다는 사실은 곧잘 잊어버린다.
두려움이 감시 장치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행복’이다.
광고 속에서 반짝이는 미소와 완벽한 삶을 보면, 우리도 저 상품을 사야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두려움과 행복은 투명한 감옥의 연료다. 사람들은 그 감정을 따라 스스로 감옥의 문을 잠근다.
우리가 서로를 두려워할 때 – 버틀러의 통찰
주디스 버틀러라는 철학자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취약한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기에,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취약성을 연대의 가능성으로 바꾸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이용할 때 생긴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특정 집단을 ‘위험한 사람들’로 묘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그 집단을 경계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한 통제를 요구하게 된다.
결국 그 두려움은 또 하나의 감옥을 만든다. 타인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두고, 각자 자기 방 안에 갇힌다.
소비의 자유라는 착각
우리는 쇼핑할 때만큼은 자유롭다고 느낀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내가 원하는 걸 고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선택지는 사실 기업이 미리 설계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열풍을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내 몸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특정한 미의 기준과 규범이 숨어 있다.
SNS 속 ‘완벽한 몸매’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관리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탓한다.
결국 소비의 자유란 감옥 안에서의 자유에 불과하다. 그 벽은 반짝이는 편리함과 즐거움으로 치장되어 있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연민도 조작될 수 있다 – 누스바움의 시선
마사 누스바움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연민이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연민마저도 선택적으로 조작된다.
예를 들어, 뉴스가 한 사건은 크게 다루면서 다른 사건은 거의 다루지 않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사람들은 자신이 분노하거나 슬퍼해야 할 대상을 미디어가 정해준 범위 안에서만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연민은 누군가가 조율하는 감정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진심으로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은 감정마저도 투명한 감옥 속에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감옥을 지키는 사람들
투명한 감옥의 무서움은 우리가 스스로 그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감옥은 강제로 갇히게 했지만, 오늘날의 감옥은 달콤한 미끼를 제공한다.
“편리하니까.”
“재미있으니까.”
“모두가 하니까.”
이런 말들은 감옥의 벽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SNS의 ‘좋아요’ 버튼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다듬는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감시이자 규율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간수이자 죄수가 된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통제하며,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
그렇다면 이 투명한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옥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대신, 작은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기.
뉴스를 보고 두려움이 밀려올 때, 광고를 보고 행복을 느낄 때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자.
“이 감정을 누가, 왜 나에게 심으려 하는 걸까?”
둘째, 서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기.
버틀러가 말했듯,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타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함께 돌봐야 할 존재로 바라볼 때 감옥의 벽은 조금씩 약해진다.
셋째, 욕망의 주인이 되기.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만 클릭하지 말고, 스스로의 취향을 천천히 탐색해 보자.
무한한 선택지가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스스로 고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벽을 드러내기
투명한 감옥은 보이지 않기에 강력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벽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한 번 그 벽을 인식하게 되면, 더 이상 그 안에서 마음 놓고 달릴 수 없다.
그 순간부터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자라난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투명한 감옥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그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손을 잡을 수 있다.
감옥을 완전히 부수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를 지키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감옥이 없다’는 착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감옥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벗어나려는 노력 속에서 탄생한다.
이 글은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감시와 통제를 일상적인 사례와 감정 중심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전문 용어와 학자의 이론을 최소화해, 독자가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일상의 작은 감옥, 우리 이야기
회사 내 투명한 감옥
홍대에서 일하는 직장인 A 씨는 매일 회식과 단톡방 공지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상사와 동료가 보내는 메시지 하나하나에 반응해야 하고, SNS 속 업무 관련 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야 한다.
겉으로는 자율 출퇴근, 유연근무 같은 자유로운 환경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사와 동료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규율하는 일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A 씨는 ‘자유롭게 일하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투명한 감옥 속에서 스스로를 감시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SNS와 비교의 감옥
B 씨는 SNS에서 친구들의 여행 사진, 맛집 후기, 취업 성공기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나의 선택은 부족한 걸까?”
이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고,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B 씨는 SNS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만든 투명한 감옥에 갇힌 기분을 느낀다.
일상 속 감시의 다른 형태
C 씨는 쇼핑 앱에서 추천 상품을 보고 ‘마음에 든다’며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 다음날, 광고가 계속 그 제품을 따라다닌다.
처음에는 편리하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선택이 누군가에 의해 예상되고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일상의 편리함 뒤에 숨은 통제는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자주 경험하는 투명한 감옥의 예시다.
작은 깨달음에서 시작되는 변화
D 씨는 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다.
“우리는 왜 늘 남의 시선에 맞춰 행동할까?”
그날 이후 그는 의식적으로 SNS 알림을 끄고, 회사 단톡방의 답장 속도를 늦추며,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만 선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감옥은 벽이 보이지 않아 견디기 어렵지만, 작은 균열과 자각으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