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정이 늦었다. 받아주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의 사실 인정에는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못해 뒤돌아서서 고개를 떨군 티가 물씬난다. 핵심 요소마저 빠졌다. 후회.
뼈저린 후회까진 바라지 않는다. 가슴에 와닿은 무슨 해명이든 있어야 했다. 지독스럽게 혐의를 부인한 전력에 비하면 그 정도는 최소한의 예의다. 여러 정황 증거에 불구하고 그가 버틴 이유로 말이 많다. 벌써 몇 번째인가.
몇 년 새 도덕의 최저선이 무너졌다. 어떤 인사가 무대에 등장한 뒤로. 지탄의 대상이었음에도 그는 반성하지 않았다. 시늉만 냈을 뿐이다.항간에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창피해서 낯을 피하거나 주변에 피해를 줄 걸 우려해 옷을 벗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건 그나마 남은 양심의 최소한이었다. 관례를 대놓고 업신여긴 그에게 서슬 퍼런 원성이 빗발쳤다. 달라진 것? 없다.그는 아무 일 없이 잘 산다.
그도 잔뜩 움츠린 때가 있었다. 저승사자가그를 둘러싼 의혹에 철퇴를 가할 기미가 상당했던 때였다. 냄새만 풍기고 시간이 덧없이 흘렀다. 그는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 모두 상대의 음해라고 몰아세웠다.그 말이 거짓임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당시로선 허망했던 주장이었지만 효과는 있었다. 시야에서 금방 사라질 것 같았던 그가 목숨을 부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혹 그가 얼토당토않은 반전의 기회를 잡은 것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그 후로 그가 거품 대신 나발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음해라는 말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썩은 음식에 파리 꼬이듯 그를 추종하는 무리마저 부지기수로 늘어만 갔다.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어떻게 꾸몄는지, 여기서 한 말을 저기서 얼마나 다르게 옮기는지 안다면 그럴 수 없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갔다. 계략이 춤추고 술수가 난무한다.허위가 세를 얻었다. 거리와 마을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작금의 현실에 분노한 사람들은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두 눈은전례 없이 초점을 잃었다. 처음부터 이 모양이었던 건가?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운 거지? 야비한 인간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잘못이든 쉬이 인정하지 말고 버텨라. 순순히 자백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길 잃은 탄식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흑화 한 교훈이 교회종을 깨뜨리기라도 하듯 세차게 울려 퍼진다.
내가 저지른 짓은 별거 아니라는 인지 하향. 그래도 내가 어떤 자 보다 낫다는 비루한 비교우위. 따지고 보면 그놈이 그놈인데 아마도 서로 비웃으며 잘도 살 모양이다. 우린 정말 제대로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