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사람 13화

증오의 역습: 우리는 왜 서로를 파괴하는가?

라인하르트 할러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 해부

by 안녕 콩코드

​어둠의 정신과 의사가 본 현대 사회의 그림자

​우리 시대의 가장 파괴적인 전염병은 무엇일까요? 전염병, 전쟁, 경제 위기...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법정 정신과 의사인 라인하르트 할러(Reinhart Haller)는 단호하게 ‘증오(Hass)’라고 선언합니다.


​할러는 수십 년간 살인범, 연쇄 살인범, 테러리스트 등 극단적인 범죄자들의 심연을 들여다본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그의 저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은 이 증오라는 감정을 단순한 도덕적 악이 아닌, '인간의 심리적 기본 장비'이자 동시에 우리 사회를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해부합니다. 이 책은 증오가 어떻게 탄생하고, 열등감이라는 연료를 먹고 자라며, 특히 익명의 온라인 무대에서 어떻게 광기를 얻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임상 보고서입니다.


​지금부터 할러가 안내하는 증오의 해부학적 구조와, 우리가 이 파괴적인 열정의 역습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심도 있게 톺아보겠습니다.


​증오의 해부학 - 파괴를 목표로 하는 냉정한 열정

​증오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이 감정이 단순한 분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할러는 이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다고 강조합니다.


​증오는 '파괴를 목표로 하는 경멸'이다

​분노(Wut)는 일반적으로 짧고 격렬한 감정의 폭발입니다. 불합리함이나 불의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며, 목적은 대개 '상황의 개선'이나 '자기 고통의 해소'에 있습니다. 분노는 일시적이고 해소되면 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증오는 근본부터 다릅니다. 할러는 증오를 "대상을 철저히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데 목적을 둔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형태의 경멸"로 정의합니다.


​증오는 냉정하고 지속적인 적의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증오가 작동하기 위해 상대를 인간이 아닌 벌레나 악마 같은 '비인간(Unmensch)'으로 격하시킨다는 점입니다. 이 비인간화(Dehumanization) 과정을 통해 증오하는 사람은 그 어떤 죄책감이나 윤리적 책임 없이 파괴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심리적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부여합니다.


​증오의 연료: 굴욕과 열등감의 갑옷

​수많은 범죄자들의 심리를 분석한 할러는 증오가 '타고난 악'이라기보다는, '심각한 심리적 상처'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증오의 가장 강력한 연료는 바로 굴욕감(Demütigung), 모욕, 그리고 해소되지 않은 열등감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이 심각하게 좌절되고, 특히 공개적으로 굴욕을 당했다고 느낄 때, 그 상처는 복수심을 동반한 증오로 발전합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결함(무력감, 실패감)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대신,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을 외부의 '적'에게 투사합니다.


​"증오는 열등감이 입는 가장 강력한 갑옷이다."


​할러는 증오를 통해 내면의 취약한 자아를 방어하고, 사회적 무력감을 상쇄하려는 심리적 움직임을 포착합니다. 온라인상에서 맹렬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의 밑바닥에는 현실에서의 무력감이나 고립감을 잊으려는 간절한 심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오의 얼굴들 -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의 그림자

​증오는 특정 범죄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현대 사회의 다양한 얼굴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자아 최적화 시대의 자기혐오와 파괴 충동

​현대는 끊임없이 '자아 최적화(Self-Optimization)'를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성공하고, 행복하며,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자기애의 붕괴'와 '자기혐오(Selbst-Hass)'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할러는 이 자기혐오가 위험한 형태로 발전한다고 지적합니다. 바로 자기혐오를 외부의 대상(사회, 특정 집단)에게 투사(Projection)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불행한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때문이야"라는 논리가 만들어지며, 자기혐오를 외부에 투사함으로써 내면의 고통을 바깥으로 돌려 파괴적인 분노를 표출합니다. 묻지마 범죄나 분노 범죄의 일부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자기혐오의 투사가 그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의 붕괴와 증오의 폭발

​할러는 증오를 표출하는 많은 이들에게서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 중독) 성향을 발견합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타인의 인정과 찬양은 생존에 필수적인 '마약'과 같습니다. 이들이 구축한 과장된 자아상(Grandiosity)이 외부의 비판, 무관심, 혹은 거절이라는 충격으로 깨질 때, 그들은 극도의 공포와 함께 파괴적인 증오를 드러냅니다.


​찬양과 숭배를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을 향한 증오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깨진 자아를 복구하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파괴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어 방식입니다. 사랑을 통한 자기애적 만족이 충족되지 않을 때, 그 관계는 가장 파괴적인 증오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이념과 집단 광기: 증오의 합리화

​증오는 개인적 상처를 넘어 이념과 결합할 때 폭발적인 사회적 위험을 초래합니다.


​증오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특정 집단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념은 증오를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이념적 증오는 개인의 죄책감을 집단의 '정의' 뒤에 숨기고, 파괴적인 행위를 '숭고한 임무'로 포장하게 만듭니다. 증오가 집단화되면 개인이 느끼는 공격성은 증폭되고 책임은 희석됩니다.


​온라인 증오의 가상화 - 가속화된 파괴

​할러가 주목하는 증오의 가장 현대적인 형태는 바로 온라인 증오(Hass im Netz), 즉 '파괴적인 것의 가상화'입니다. 인터넷은 증오가 개인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가속화된 사회 현상'으로 폭발하는 거대한 용광로입니다.


​익명성의 면죄부와 혐오의 기후

​온라인 환경은 증오를 분출하는 가장 완벽한 무대입니다.

​탈억제 효과(Disinhibition Effect): 익명성 뒤에 숨는 순간,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억눌려 있던 공격성과 증오를 거리낌 없이 분출합니다. 할러는 이를 '익명성의 면죄부'라고 지적합니다. 책임감이나 죄책감 없이 상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증오의 카타르시스: 온라인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경멸하는 행위는 현실의 좌절과 무력감을 잊게 해주는 가장 값싼 심리적 보상이 됩니다. 즉각적인 반응과 동조자들의 지지를 얻을 때마다, 증오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중독됩니다.

​비인간화의 대량 생산: 온라인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향해 멸칭을 붙이고 조롱하는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을 통해 비인간화를 대규모로 가능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집단적인 '사이버 린치'나 마녀사냥이 쉽게 발생합니다.


​증오 공동체: 고립된 자아의 탈출구

​현대 사회의 고립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증오를 공유하는 집단에 속함으로써 강렬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얻습니다.

​에코 챔버와 확증 편향: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증오 감정을 끊임없이 강화합니다. 자신과 비슷한 증오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서로의 분노를 정당화하고, 외부의 비판은 철저히 차단됩니다. 이 '증오의 에코 챔버'는 집단 내에서의 공격 행위를 '정의로운 투쟁'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존재 가치의 왜곡: 현실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증오 집단 내에서 '깨어있는 전사'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습니다. 증오의 대상을 공격하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삶에 의미와 임무가 됩니다. 할러는 이를 '존재 가치의 왜곡된 확보'라고 분석하며, 이들이 증오를 포기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합니다.

​책임 회피와 문제의 단순화: 복잡한 현실의 문제(경제적 어려움, 사회 불평등)를 "다 저 (특정) 집단 때문이야!"라고 규정하고 공격함으로써, 개인의 실패나 무력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일시적인 해방감을 얻습니다. 증오는 가장 쉽고 파괴적인 '스트레스 배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증오의 종식 - 이성, 공감, 그리고 책임의 회복

​할러는 증오의 역습에 맞서기 위한 궁극적인 해법으로 '지식(Wissen)'과 '공감(Empathie)'의 회복을 제시하며, 개인과 사회 모두의 노력을 촉구합니다.


​증오를 이겨내는 개인적 심리 전략

​증오를 이겨내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감정의 정밀 분석 및 인정: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분노인지, 아니면 상대를 파괴하려는 증오인지 정확히 정의합니다. 증오의 진짜 뿌리가 나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석합니다.

​'잠시 멈춤' 버튼: 증오의 감정에 휩쓸리기 전에 '잠시 멈춤(Stop-Taste)' 버튼을 누르고 이성적인 사고를 회복하려 노력합니다. 감정의 폭발을 지연시켜 이성을 회복합니다.

​파괴성 전환: 증오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취미, 운동, 창작 등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환합니다. 분노의 에너지를 자기계발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비인간화 거부와 공감: 증오의 대상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의식적으로 되새겨 비인간화를 거부합니다. 공감은 증오의 쇠사슬을 끊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용서와 자유: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한 행위입니다. 증오의 짐을 내려놓고 나아갈 용기를 갖습니다.


​사회적 혐오의 기후에 맞서는 방어벽

​증오의 역습은 시스템적인 대응을 요구합니다. 사회 전체가 증오를 방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공감 능력 강화 교육: 학교와 가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Empathie)을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공감은 증오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 전제인 '비인간화'를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 온라인의 가짜 뉴스와 선동적인 증오 메시지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사실과 감정,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는 능력이 혐오의 확산을 막는 핵심입니다.

​온라인 책임의 강화: 익명성 뒤에 숨은 증오 표현에 대해 플랫폼과 사회가 법적, 도덕적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의 발언도 현실과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증오는 '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

​라인하르트 할러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은 우리에게 "내가 지금 왜 저들을 증오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


할러의 최종적인 통찰은 증오가 결국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닌, 증오하는 '나 자신'의 결핍과 불안정성에 대한 가장 큰 경고 신호라는 것입니다. 증오의 역습을 멈추는 힘은 결국 상대의 변화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불안과 굴욕감을 직시하고 이성이라는 빛을 비추는 용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심리학적 지식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지켜낼 '인간성 회복 매뉴얼'입니다.




저자 소개 및 추천 도서


저자 소개: 라인하르트 할러 (Prof. Dr. med. Reinhard Haller)

​라인하르트 할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법정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 치료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권위 있는 정신과 병원의 수석 주치의(Chefarzt)로 재직했으며,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법정 정신 감정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그는 수많은 흉악 범죄, 특히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들의 심리 감정을 맡아왔습니다. 성범죄자, 연쇄 살인범, 테러리스트, 그리고 극단적인 증오 범죄자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인간의 공격성과 파괴성에 대한 독보적인 통찰을 쌓았습니다.


​할러는 전문적인 학술 활동 외에도 일반 대중을 위한 다수의 심리학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습니다. 그의 저서들은 복잡한 범죄 심리와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쉽고 명료한 언어로 풀어내어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은 그가 평생 연구한 '증오'라는 주제의 집약체입니다.

증오에 관한 심층 탐구를 위한 추천 도서 3선

​할러의 책을 통해 증오라는 감정의 해부학에 입문했다면, 다음 책들을 통해 그 심연을 더 깊이 탐구해 보시길 권합니다.


​마사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Disgust)'라는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 차별과 법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 분석합니다. 혐오가 비합리적인 감정으로 작용하여 특정 소수자를 '인간 이하'로 배제하고 차별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증오의 전 단계인 혐오의 사회적, 법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고전입니다.


​아론 베크, 《우리는 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증오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Prisoners of Hate)》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의 창시자 아론 베크가 분노, 적대감, 폭력의 인지적 뿌리를 파헤칩니다. 베크는 증오심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왜곡하여 보는지(인지적 오류), 그리고 이 왜곡이 어떻게 증오를 강화하고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인 치료 사례와 함께 제시합니다. 증오의 심리적 패턴을 교정하는 방법론에 관심 있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


​볼프강 벤츠,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Antisemitism: An Introduction)》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벤츠는 역사상 가장 지속적이고 파괴적이었던 증오의 형태인 반유대주의를 다룹니다. 이 책은 증오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어떻게 문화, 종교, 정치 이념에 깊숙이 침투하여 집단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될 수 있었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합니다. 집단적 증오와 선동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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