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사람 11화

우리가 몰랐던 나치 독일의 얼굴

1930년대, 그들은 왜 '악마의 제국'으로 휴가를 떠났나?

by 안녕 콩코드


​"히틀러의 독일은 사실… 근사한 여행지였다"

​"그 악마의 나라를 보았지만, 아무도 종말을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가 '나치 독일'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가스실, 홀로코스트, 잿더미가 된 도시, 그리고 히틀러의 광기 어린 연설일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결말을 아는 우리에게, 나치 독일은 악마가 지배했던 어둠의 시대로만 기억됩니다. 역사의 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하지만 잠시만, 당신이 시간 여행자가 되어 1930년대 중반의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1936년, 이 도시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거리가 가정주부가 청소한 것처럼 깨끗해요!"

​"실업자가 사라지고, 젊은이들은 생기가 넘쳐요!"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고, 호텔은 청결하며, 물가는 저렴해요!"


​심지어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가 침체되었던 당대의 서구 사회를 비판하며, 질서와 효율성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독일'에서 오히려 희망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히틀러를 '독일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자, 이쯤 되면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아는 그 '악마의 제국', 제3제국(Third Reich)은 정작 당대의 수많은 외국인에게 왜 이토록 매력적이고, 심지어 모범적으로 보였을까요?


​이것이 바로 줄리아 보이드의 역사서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편하지만 흥미로운 지적 도전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나치 시대를 파헤칩니다. 거창한 정치 분석이나 군사 전략이 아닙니다. 대신, 전쟁의 결말을 알지 못한 채 나치 독일을 직접 겪은 수많은 '여행자'들의 가장 사적인 기록에 주목합니다.


​평범한 관광객의 일기, 올림픽 선수단의 편지, 외교관의 보고서, 기자들의 기사, 심지어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의 기록까지. 보이드 작가는 이 모든 1차 사료를 퍼즐처럼 조립해, '히틀러 시대의 초상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를 아는 우리의 '전지적 시점'을 잠시 내려놓고, 그 시대 여행자들의 눈높이에서 나치 독일을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깨끗한 거리와 활기찬 젊음 뒤에 숨겨진 유대인 상점의 낙서와 은밀한 폭력, 그리고 선전(프로파간다)의 교묘함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다음의 질문과 마주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 시대를 여행했다면, 과연 진실을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깨끗하고 효율적인' 모습 뒤에는 어떤 불편하고 숨겨진 진실이 가려져 있을까요?"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20세기 가장 어두웠던 순간을 조명하면서,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은 왜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가'라는 우리의 본성을 날카롭게 성찰하게 합니다. 이제, 시간 여행에 동참하여 역사의 방관자들이 남긴 생생한 기록을 따라가 봅시다.

1933년 3월 21일 포츠담 위수교회에서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힌덴부르크 대통령(오른쪽)에게 인사하는 히틀러 총리. 힌덴부르크는 히틀러 독재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사진=퍼블릭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왼쪽)와 히틀러. 로이드 조지는 ‘接神하여 황홀경에 빠진 사람’처럼 히틀러를 찬양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1935년 영국인 의사 매슈스 가족이 휴가 중 히틀러 별장이 있던 베르히스가덴을 방문한 모습. 이들은 우연히 히틀러(맨 오른쪽)와 마주쳐 기념사진을 찍었다. /페이퍼로드


바이마르 공화국, 폐허에서 '관광 대국'으로 (1919~1933년)

베르사유 조약의 그늘과 독일을 향한 동정: "이 불쌍한 나라를 돕자!"

​역사는 흔히 극적인 사건부터 시작되지만, 줄리아 보이드는 나치즘의 광기가 피어나기 훨씬 전, 독일이 가장 비참했던 시기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1918년,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무거운 짐은 독일을 짓눌렀습니다. 막대한 배상금, 영토 상실, 군대 축소... 그야말로 국가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수레에 지폐를 싣고 빵 한 덩이를 사야 할 지경이었죠. 절망과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독일의 비참함은 외국인들의 '동정'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는, "전쟁은 끝났으니, 이제 독일에 너무 가혹하지 말자"는 정서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많은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예술과 철학의 나라인 독일 문화를 여전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폐허가 된 땅을 직접 보고 싶었고,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독일 국민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여행자들의 초기 기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길거리는 쓰레기로 가득했지만, 독일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여전히 성실하고 예의 바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무너졌는데도, 그들은 어떻게든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대단한 민족이다.”


​여행자들의 눈에 비친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독일은 '고통받지만 근면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독일 국민이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를 일으키려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는 이후 나치가 만든 '새로운 독일'에 대한 환상의 기반이 됩니다. 나치 정권은 이 '근면성'과 '질서의식'을 자신들의 성공 스토리로 포장해 전 세계에 팔아먹을 줄 알았던 겁니다.


​나치 정권 등장, 그리고 관광의 역설: 관광은 최고의 '선전 도구'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독일의 '여행'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나치즘은 국제주의를 혐오했지만, 관광의 힘은 철저히 이용했습니다. 왜냐고요? 관광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었고,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프로파간다(선전)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나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독일을 '관광 대국'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인프라 혁신: 히틀러의 치적으로 꼽히는 아우토반 건설은 사실 군사적 목적이 컸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경제를 살리는 효율적인 사업'으로 보였습니다. 도로는 깨끗했고, 기차는 정시에 도착했으며, 시골 마을까지 정돈된 모습이었습니다.

​'친절'과 '질서'의 연출: 나치 정권은 관광객이 머무는 지역의 청결과 주민들의 '친절'을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외국인들은 호텔이 깨끗하고 서비스가 훌륭하다는 데 감탄했습니다. 심지어 나치 당원들은 외국인에게 모범을 보이라는 지침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관광업계의 무지 혹은 공모: 영국 최대 여행사인 토마스 쿡(Thomas Cook)은 나치가 집권한 이후에도 독일 여행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벌이가 최우선이었고, 정치적 논란은 외면했습니다. 심지어 전쟁 직전인 1939년 9월 예약자들까지 있었다니, 나치의 선전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이 '깔끔하게 포장된 독일'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들이 본 것은 나치의 폭력이 아니라, 실업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활력 넘치는' 독일 청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질서'와 '효율성'은 곧 나치즘의 폭력성을 감추는 완벽한 위장이었습니다. 여행자들은 마치 무대 위에서 연출된 연극을 보는 관객과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웠지만, 무대 뒤에서는 이미 암울한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매력적인 겉모습과 숨겨진 진실이 어떻게 교차했는지, 여행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이상적인 독일'과 '숨겨진 진실'의 교차로 (1933~1936년)

​외국인의 눈에 비친 '새로운 독일'의 매력: "와, 여긴 우리보다 앞섰어!"

​나치 독일이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던 1930년대 중반, 수많은 외국인들의 일기와 편지에는 놀라움과 찬사가 가득합니다. 이들이 본 제3제국은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 속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① 질서와 효율성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

​당시 서구 세계, 특히 미국과 영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실업과 사회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에 온 여행자들은 충격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청결함은 국력': 미국의 극작가 마틴 플레빈은 "청결함, 효율성, 유능함, 질서의식,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감탄했습니다. 실제로 베를린 거리는 너무 깨끗해서 마치 독일 가정주부가 매일 청소한 것 같다는 기록이 많았습니다.

​'활력'의 상징, 젊은이들: 실업으로 고통받던 다른 나라와 달리, 독일의 젊은이들은 제복을 입고 히틀러 유겐트(Hitler Jugend) 같은 조직에 참여하며 활기차게 움직였습니다. 이는 외국인들에게 "독일이 혼란을 극복하고 마침내 재건에 성공했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에게 나치 체제는 '질서와 절도가 있는 효율성 높은 조직'으로 보였습니다.


​② 히틀러라는 '영웅': 오판과 찬양

​일부 외국인들에게 히틀러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국민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영감이 가득한 지도자이자, '독일의 조지 워싱턴'으로까지 불렸습니다.


​심지어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같은 거물 정치인조차 히틀러를 만난 뒤 그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볼셰비키)의 위협이 커지자, 히틀러의 독일이 이를 막아줄 '서구 문명의 방패'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품었습니다.


​③ 그러나, 유대인 박해의 '외면' 혹은 '축소 해석'

​가장 씁쓸한 부분은, 여행자들 대다수가 노골적인 반유대주의의 실상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애써 외면했다는 점입니다.

​'관광객의 눈'에 가려진 폭력: 나치 당국은 유대인 상점에 대한 낙서나 공공장소의 차별적 팻말('유대인 출입 금지')을 관광객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는 잠시 숨기거나 제거했습니다.

​자기 위안: 설령 이를 목격하더라도, 많은 여행자는 "저건 극단적인 일부의 행동일 뿐이야", "어느 나라에나 과격파는 있지", 혹은 "어쨌든 그들은 경제를 안정시키고 있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흑인 운동선수의 딜레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들은 본국(미국)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나치 독일이 자신들에게는 의외로 '친절했다'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독일 사회의 더 큰 악(反유대주의)을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1936 베를린 올림픽: 최대의 선전 무대

​1936년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전 세계를 상대로 펼친 가장 화려하고 대규모의 '연출된 공연'이었습니다.

​완벽한 무대 연출: 나치는 올림픽 기간 동안만이라도 모든 반유대주의 표지판을 제거하고, 잘 정돈된 경기장과 열광하는 군중을 보여주며 '문명국 독일'의 이미지를 극대화했습니다. 텔레비전 생중계까지 동원된 이 행사는 나치의 조직력과 활력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세계의 찬사: 미국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해외 인사들이 "고대 그리스 이후 독일만큼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나라는 없다"고 칭송했습니다. 그들은 나치가 보여준 '겉모습'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습니다.

​깨어있는 목격자: 그러나 모두가 속은 것은 아닙니다. 400m 달리기 금메달리스트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 아치 윌리엄스는 "추잡한 나치는 하나도 보지 못했고, 그저 수많은 훌륭한 독일인들만 보았다"고 말하며 나치의 선전 전략에 의도적으로 말려들지 않았음을 암시했습니다. 이처럼 소수의 예리한 관찰자들은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공포를 감지했습니다.


​이 시기 여행자들의 기록은 '진실'과 '연출된 환상'이 얼마나 종이 한 장 차이였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역사의 목격자였지만, 대다수는 진실 대신 '보고 싶은 성공 신화'를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 환상은 비극적인 현실과 충돌하게 됩니다.



광기의 그림자가 드리우다 (1937~1939년)

​외교관과 기자의 냉정한 시선, 그리고 낙관론의 종말

​1936년 올림픽의 화려한 막이 내린 후, 나치의 선전은 점점 더 얇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여행의 성격이 조금씩 변모합니다. 순수한 관광객보다는 독일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외교관, 기자, 정치적 인사들의 방문이 더 중요해집니다.


​① 외교 문서 속의 경고: 무시된 진실

​외교관들은 여행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베를린과 지방 곳곳에 머물며 나치 정권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히틀러의 야욕 노출: 이들의 보고서에는 군비 확장, 영토 야욕, 그리고 유대인 박해가 더 이상 '소수의 과격한 행동'이 아님을 경고하는 내용이 가득했습니다. 나치는 영토 확장을 숨기지 않았으며, 서구 열강의 언론은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실었습니다.

​유화 정책의 늪: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정부는 이 경고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히틀러를 '말만 거칠 뿐 대화가 가능한 지도자'로 오판했고, 전쟁을 막기 위해 '유화 정책(Appeasement)'을 고수했습니다. 외교관들이 전하는 냉정한 진실은 지도부의 '보고 싶은' 낙관론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②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의 충격: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폭력

​1938년 11월, 나치의 광기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대인 상점과 회당이 파괴되고, 수많은 유대인이 폭행당하거나 체포되었습니다. 바로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 수정의 밤)' 사건입니다.

​환상의 붕괴: 이 사건은 독일을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나라'로 믿었던 외국인들의 환상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자주 다니는 중심가에서도 폭력과 파괴의 흔적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여행자의 딜레마: 이 시기 독일을 찾았던 외국인들의 기록에는 공포와 함께 자기 합리화의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내가 이 나라에 와서 이걸 봐야 하나?", "빨리 떠나야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전쟁은 없을 거야"라는 불안한 희망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관광지'가 된 공포의 장소: 다하우 수용소

​가장 충격적인 기록 중 하나는, 나치 정권 초기에 다하우 강제수용소가 일부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선전용 관광 코스'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정화'의 쇼: 나치는 다하우를 방문하는 외교관이나 기자들에게 이곳이 '반사회적인 범죄자'나 '공산주의 선동가'들을 재교육하고 교화하는 시설인 양 포장했습니다. 방문 전에 수용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수감자들에게 '즐거운' 모습을 연출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방관자의 탄생: 다하우를 방문한 외교관들은 수용소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나치의 안내에 따라 겉모습만 보고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공포의 현장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고, 침묵했습니다. '역사의 목격자'였지만 결국 '침묵의 방관자'로 남은 사람들의 씁쓸한 초상입니다.


​여행의 끝: 전쟁의 발발과 후회

​1939년 9월 1일,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독일을 찾았던 모든 외국 여행의 비극적인 종말이었습니다.

​마지막 탈출: 전쟁 발발 직전, 외국인들은 서둘러 기차에 몸을 싣고 독일을 탈출했습니다. 이들은 뒤늦게 자신들이 누렸던 '깨끗한 여행'이 얼마나 잔인한 환상이었는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깨진 거울: '질서와 효율'을 찬양하며 나치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 특히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에 히틀러를 옹호했던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순진한 착각이 인류 최악의 전쟁을 방관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깨닫고 큰 후회에 빠집니다.


​줄리아 보이드는 이 책을 통해, 역사는 결코 '모든 사람이 아는 진실'만을 따라 흐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역사의 교훈'도, 당시에는 엄청난 혼란과 오판, 그리고 의도적인 외면 속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모든 여행 기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짚어봅니다.


에필로그: 오늘날의 여행자에게 던지는 경고

​'지금, 여기'의 나치를 보는 법: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까?

​줄리아 보이드의 책은 수많은 여행자의 기록을 통해, 역사가 결코 흑백논리로 움직이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명확한 '악'이었던 나치 독일이, 당대에는 그저 '성공한 국가', '질서정연한 사회'의 모습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섬뜩한 교훈을 남깁니다.


​① 시간을 초월한 질문: 당신은 얼마나 '진실'을 볼 수 있을까?

​이 책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자기 성찰'입니다.

​편향된 시선: 1930년대 여행자들은 실업과 혼란에 지쳤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효율성'과 '질서'라는 겉모습에 열광했습니다. 그들은 나치가 제공하는 '성공 신화'라는 달콤한 환상을 보고 싶어 했고, 그 대가로 폭력과 차별이라는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았습니다. 즉, 그들이 독일에서 발견한 것은 나치의 본질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이 투영된 이미지였습니다.

​'뒷수습 없이' 사는 현실: 우리는 미래의 결말(2차 세계대전)을 알기 때문에 나치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 어떤 '뒷수습'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행하거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권위주의적인 국가들의 '경제 성장', '안정된 사회 질서'라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인권 문제나 폭력적인 통치는 없는지, 우리는 과거의 여행자들처럼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② 새로운 형태의 '선전'과 '외면'

​오늘날의 세상은 나치 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선전의 기술은 더 교묘해졌습니다.

​관광과 선전의 결합: 일부 권위주의 정권은 나치와 마찬가지로 관광, 국제 행사, 인프라 건설 등을 통해 '정상 국가' 혹은 '성공 국가'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합니다. 여행객들은 깨끗하고 화려한 대도시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 도시 외곽에 존재하는 억압이나 차별의 현실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역사적 불감증': 여행자들은 자신이 잠깐 머물다 떠나는 '손님'이라는 특권적인 위치 때문에, 그 사회의 깊은 문제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치 나치 시대의 여행자들이 "이건 독일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듯이 말입니다.


​'목격자'와 '방관자' 사이에서: 우리의 윤리적 책임

​줄리아 보이드의 책은 우리 모두에게 윤리적 책임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서 '진실을 직시한 소수의 목격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의 방관자'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 역사적 교훈은, 불편한 진실을 찾아보려는 의지가 없으면 쉽게 외면된다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본능을 거슬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이면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현대 시민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질서 너머의 인간성: 나치 독일이 보여준 '질서'와 '효율성'은 결국 인간성의 파괴 위에 세워진 허상임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효율과 질서가 인간의 고통과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둔갑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단순히 과거를 조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 보내는 경고문'입니다. 거울 속의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역사서이며, 우리가 어디로 여행하든, 무엇을 보든 비판적인 시선과 도덕적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함을 역설합니다.




보충 설명: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실제 그들의 기록

​줄리아 보이드의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의 핵심은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이 책이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약점을 파고드는 거울이 될 수 있도록, 당시 외국인들이 남긴 실제 기록의 예시와 그 맥락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충합니다.


1. 관광객이 '청결'에 열광한 진짜 이유: 대비와 선전

​1930년대 초, 독일을 방문한 영국과 미국 관광객들이 가장 흔하게 기록한 단어는 "Cleanliness" (청결)와 "Order" (질서)였습니다. 왜 이것이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대비 효과 (Contrast Effect): 당시 영국과 미국은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적 불안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는 부랑자가 넘쳤고,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히틀러의 연출: 나치는 도시를 정비하고, 실업자들을 강제 노동(예: 아우토반 건설)에 투입하여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외국인의 눈에는 '효율적인 독재가 혼란한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착시 효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실제 기록: 미국 극작가 마틴 플레빈은 "청결함, 효율성, 유능함, 질서의식,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썼습니다. 이는 나치의 정치가 아니라, 나치가 만들어낸 '삶의 질'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2. 반유대주의에 대한 충격적인 '자기 합리화'

​여행자들은 유대인에 대한 폭력을 완전히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를 애써 합리화했습니다.

​'다른 문제'로 치부: 나치가 반유대주의 표지판을 걸었을 때, 일부 영국인 방문객들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조치는 불쾌하긴 하지만, 독일 내부의 문제이며, 어쨌든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처리하고 있다."

​파시스트의 오판: 전직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1936년 히틀러를 만난 뒤, 그를 "독일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극찬하며,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완화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바람과 기대를 히틀러에게 투영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증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 아치 윌리엄스는 나치 정권이 자신을 정중하게 대우했다고 증언하며, "추잡한 나치는 하나도 못 봤고, 훌륭한 독일인들만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나치조차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으로 느껴지는 기이한 역설을 보여줍니다.


​3. '관광지 다하우'와 외교적 침묵

​초기 나치 정권은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정치범 교화 및 재교육 시설'로 홍보하며, 일부 외교관이나 기자들을 참관시켰습니다.

​연출된 현장: 나치 관계자들은 방문 전 수용소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수감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수용소는 '질서를 위해 필요한 시설'처럼 보이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책임 회피: 다하우를 방문한 외교관들은 수감자들의 앙상한 모습과 공포 분위기를 분명히 느꼈지만, 공식 보고서에는 '규율이 엄격하지만 질서정연한 시설'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불편한 진실을 알았지만, 개인적 혹은 외교적 관계를 해칠까 두려워 '객관적인 척' 침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방관의 가장 위험한 형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치즘의 성공은 치밀한 계획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가 만들어낸 '공범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여행자들은 '좋은 가격', '깨끗한 환경', 그리고 '성공적인 독재'라는 달콤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모든 것의 기반이 된 잔혹한 폭력을 외면하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장 무거운 교훈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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