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장구치기 좋은 이런 고백에는 의외로 남자들 순발력이 광속급이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동시떠블(다발)로 나도,라고 답한다. 그것도 대단히 만족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짝짝짝. 잘했다. 근데 목숨이 붙어있을지 장담할 순 없다. 곧 덮칠 쓰나미를 이겨낸 사람 여태 못 봤다. 아마도 내가 5억 8천9백9십 번째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생각하니 입 안이 씁쓸하다. 여자의 사랑해,라는 말에 바로 나도,라고 말이 튀어나오려거든 입부터 틀어막자. 그게 살 길이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 대해서보다 자신이 남자에 대해 더 많이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한 심정이 든단다. 여자가 그렇다면 그렇다는 것이니 따지지 말자. 여자가 황홀경에 사로잡혀 사랑해,라는 말을 건네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해,라고 말하라. 사랑의 폭과 깊이를 가지고 아무리 싸워도 욕먹지 않는다. 세상에 싸우는 것을 뜯어말리지 않을 사람 없다. 예외가 있다. 사랑싸움이다. 어린애 같이 내가 더 사랑해,라고 말하라고? 유치한 생각이 든다면 정말 멀었다. 상대의 화법에 맞춰 답을 주는 건 '알흠다운' 매너이자 미덕이다. 곧 남녀 세계의 국룰이다. 암기하자.
- 사랑해.
- 내가 더 사랑해.
4. 너와 결혼하고 싶어.
위 3번과 같은 유형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도,라고 동의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당신이 누구와 무엇을 하려는지 당당히 밝혀야 한다. 누구든 상대가 결혼하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했는데 가만히 나도,라고 답했다면 나라도 그 남자 혹은 그 여자의 입을 찢어버렸을 거다. 갑자기 험한 말 해서 미안하다. 흥분했다.
사람 사이엔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한다 잖은가. 셈을 분명히 하지 않은 사람을 우린 종종 도둑놈 심보라고 우습게 본다. 연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비중 있는 말에는 비중 있게 답해야 한다. 혹시 모를 거절에 대한 부담감을 무릅쓰고 너와 결혼하고 싶어,라는 말에 나도, 라니 그 말이 야멸차게 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다 아는 사실도 연인은 직접 듣고 싶어 한다. 그러니 복창하기 바란다. 나도 너와 결혼하고 싶어. 연애 전선에 빨간등이 켜지지 않으려면 하루 한 번 이상 반복하라. 그 편이 평생 까이는 것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