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같은 인간을 살해하는 이유, '비인간화'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의 《인간 이하》

by 콩코드


2차 세계대전 선전물을 본 철학자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전쟁 당사국 간에 약간의 표현상 차이만 있을 뿐 전쟁 상대를 크게 해충이나 짐승, 사냥감에 비유한 것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전물에 따르면 상대는 박멸하거나 멀리 쫓아내고 영구 포획할 대상일 뿐이었다. 더는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존중하며 보살필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5,000만명에서 7,000만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스미스는 ‘비인간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비인간화는 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하는 행위다.” 비인간화는 인간 이하로 타인을 규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괴물 혹은 짐승, 악마라는 낙인을 찍은 뒤에 ‘그것’들을 영구히 격리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부추긴다. 주술에 빠진 다수가 타인을 어떻게 다룰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홀로코스트, 인종청소, 집단 린치, 제노사이드 등등에서 타인을 향한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법도 잔인했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절멸을 꾀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러 차례에 걸쳐 속 쓰리게 배운 교훈에 불구하고 인류는 타인을 향한 증오심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하다. 미국에 맞서 일본은 아시아 전역에서 학살과 강간을 일삼았다. 인육을 먹고 사람의 목을 사사로이 베었다. 그들에게 타인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에 앞서 미국은 일본인을 ‘이’에 빗대었다. 일본인은 박멸의 대상이었다. 이 모든 사태가 단순히 과거의 일이었을 뿐일까?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지성을 놀랍도록 고양했다. 다시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인류애를 부르짖었다. 각종 조치에 자발적으로 나섰다. 이제 그와 같은 참담한 현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을 ‘기생충’에 비유했다. 아울러 전쟁이 고양이에게 구충제를 투여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기시감도 이런 기시감이 없다. 전쟁 초기 상황은 대단히 암담했다. 러시아가 백린탄을 쏜 정황마저 드러났다. 수적 우위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비인간화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 입장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결국은 공멸을 피하기 어렵다. 특정 목적을 위한 선동에 넘어가는 순간 현재의 인류 또한 충분히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사태에 대응할 개연성이 높다.



스미스는 선동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안을 파고드는지 영국 철학자의 연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영국의 철학자 로저 머니컬은 히틀러와 괴벨스의 대선 유세 연설에 3단계 패턴이 있음을 발견한다.



첫째, 대중에게 우울감을 심어준다. 둘째, 공포심을 자극한다. 셋째, 마법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머니컬은 이 3단계를 거치면 평범한 대중은 태세를 바꿔 선동에 빠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분석했다.





덧붙이면 우울감은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다. 공포심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부추긴다. 해결책은 단 하나. 부정적인 상황을 조성한 상대는 상종할 가치 없는 벌레일 뿐이므로 밟아서 죽이면 된다. 인간이 아닌 벌레를 죽이는 일에 도덕적 혼란이 들어설 자리가 없잖은가.



스미스는 정치인들이 이 3단계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고 보고, 어떤 경우에도 타인의 비인간화에 선동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인간화의 최극단은 상대를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악의 화신은 진영에 대단히 위협적이므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퍼뜨리기 용이하다. 그후 인류가 어떤 방식을 동원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 않다.



사태가.과거와 비교가 되지 만큼 악화되지 않으려면 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비인간화’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나아가 비인간화 속성에 어떻게 대응할지 깊이 고민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는 뉴잉글랜드 대학교 척학과 교수다. 2012년 G20 정상회담에서 〈RETHINKING: G20 미래를 설계하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같은 해 애니스필드-울프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글로벌 협력 위원회 대량 학살과 홀로코스트 자문 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가장 위험한 동물》(2009), 《인간 이하》(2011), 《비인간성에 관하여》(2020), 《괴물 만들기》(2021)가 있다.




영상 사진 출처,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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