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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Aug 24. 2024

평판만으로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없다.

뉴턴의 예, 평판의 위험성


188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제출된 아이작 뉴턴의 논문에 붙은 딱지. 과학적 가치가 혀 없다. 1936년 그 논문이 런던소더비 경매장에 나오는데. 당대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뉴턴의 논문을 낙찰받았다. 1942년 런던의 왕립학회 클럽 강연에서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연 전까지 뉴턴의 논문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케인즈. 대가의 면모란 그런 것이리라. 케인즈는 혼신의 연구로 높은 통찰을 얻었다. 그가 내놓은 평가는 청중에게 뜨거운 울림을 주었다. 몰입을 떨어뜨릴 각오를 하고 말씀드린다.



지성을 가차 없이 흔드는 책을 만나거나 어떤 이의 놀랍도록 차가운 판단에 직면할 때마다 갈망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는 언제 이런 글을 쓰려나? 나는 언제 청중 앞에서 이런 연설을 할 수 있으려나? 거인의 어깨에 올라 탈 화창한 봄날을 기대하며 케인즈가 강연에서 한 말을 그대로 옮긴다.



"18세기 이후 뉴턴은 가장 위대한 최초의 현대 과학자로, 냉철하고 편견 없는 이성에 따라 사고하

는 법을 가르친 합리주의자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습니다. 1696년 그가 을 꾸려 캐임브리지를 떠날  짐 상자 안에 있던 글들은 약간 훼손되었으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글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나와 똑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뉴턴은 이성의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마지막 주술사였고, 마지막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만 년 전 우리의 지적 유산을 만들기 시작했던 사람들과 같은 눈을 통해 가시적이고 지적인 세계를 바라본 워대한 지성이었습니다."



케인즈가 평판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는 뉴턴의 한 면에 착목하지 않았다. 우린 주로 대가의 어느 한 면을 상찬하거나 부적한 부분을 대가의 나무랄 데 없는 성취로 메우려는 유혹을 자주 받는다. 그렇게 한 사람이 후광마저 완벽한 인물로 완성된다. 틈이라곤 전혀 없는 인물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넘사벽을 느낄 뿐이다. 그렇게 되어선 그를 넘어서려는 어떤 의욕도 생겨나지 않는다. 거인의 풍모는 인정하되 거인이 이룬 성취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그 고도의 진정성은 대가의 공과를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이어서 쓴다.



다음 회에선 뉴턴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본다. 인간의 인간다운 모습은 좌충우돌, 기벽, 혹은 그런 것들에서 먼 우스운 광경이라거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떤 행위에서 비롯한다. 뉴턴이 중력으로 표상되는 현대적인 우주를 구상한 사람이라 빈틈이라곤 전혀 없는, 요즘 말로 엄친아 혹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오해다.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구석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실 의외라 싶지만 그래서 그의 다른 면이 부각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순 없을까? 인위적인 평가와 고답적인 상상으로는 한 사람의 전모를 볼 수 없다. 과욕은 대부분 눈이 가린 곳에서 걸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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