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그 페터 비에리의 작품이었다면 벌써 읽었을 게다. 식상한 제목이라는 생각에 목차조차 읽을 엄두를 내지 않았다. 벌써 수개 월 전의 일이다.
목차를 봤다면 내친김에 저자 약력도 보았겠지. 오늘은 그것부터 챙겨 보았는데 전례가 거의 없는 나로선 도통 까닭을 모르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감정이 고양된 때문이었을까? 요즘 부쩍 꽂힌 '삶에 관한' 책에 반색했던 탓일까? 일단 패쑤. 몇 장이라도 읽고 보자.
페터 비에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썼다. 아차차. 문제의 책은 《삶의 격》이다.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들 조금씩은 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더러 결심을 굳힌 사람들은 새로운 인생을 좇아 강을 건널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런대로 짐작가능한 인생을 산다. 양자의 선택이 각각 어떤 바람을 몰고왔는지 평가가 없다면 어느 쪽이 나은 선택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문제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마뜩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누가 어떤 인생에 비토를 놓을 자격이 있을까? 그건 치기와도 같은 일이라 도마에 올리는 것부터 대단히 섣부르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가던 길을 벗어난 사람들은 그곳에서 낯선 사람을만나고 서로를 추켜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길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도 같은 욕구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격려하느라 여념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 순간에도 인생은 묘연한 것이었으므로.
우린 로버트 프루스트의 시를 기억한다. ‘가지 않은 길’에 놓였을 찬란한 미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현재에 약간의 파격이 있기를, 더러는 의미 있는 변화라도 있기를 소망하는 일이란 간단치 않다. 이때 이런 소설 한둘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에 관해 대리 만족의 지평을 열어주기도 한다는 것, 고맙다. 얼마간이라도 살아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기대를 충족해야 숨통이 트이는 법이니까. 인간 실존과 삶의 방식에 돋을새김 된 그레고리우스의 비범한 선택은 바로 우리가 그때 ‘가지 않은 길’이다. 등장인물의 파격적인 행보, 존엄에 관한 끝없는 질문, 생에 대한 통찰은 어떤 맥주의 끝맛처럼 날카롭지만, 거기에 베이지는 않는다.
소설의 중심을 잡아주는 구성 자체가 워낙 견고한데 문체부터 나긋하다. 봄날 여린 잎이 무성한 잔디에 누워 막 걷힌 구름 뒤로 뽀얗게 단장한 하늘을 보는 것처럼 그렇다. 사건을 구성하고 상황을 묘사하는 솜씨가 워낙 빼어난 점도 놓칠 수 없다. 소설 읽는 맛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면에서, 여러 사정과 심리가 결부되어 있지만, 기대하지 않은 결말도 적잖이 작용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아니다. 끝이 좋으려면 시작은 물론이고 과정 모두 그럴듯해야 한다. 바로 그 그럴듯한 소설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만난다. 《삶의 격》의 저자가 페터 비에리인 줄 알고 뒤도 안 보고 선택한 데는 전작 소설에서 마주한 전율과도 같은 느낌에 기반했다. 2004년에 출간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독일어권 국가에서만 200만부 이상 핀매되었다. 2013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페터 비에리는 소설가이자 독일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그의 필명이다. 생전에 그는 본명과 필명으로 소설과 철학서를 꾸준히 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그가 타계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중요한 여러 경험에 이해 가능한 빛을 비추려는 시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철학이다." - 《삶의 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