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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어느 쪽이 나간 걸까요?

사과는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성립한다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심각

by 콩코드


-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요.

- 통지서 나간 것 때문이죠?

- 아, 아니....

- 이번 달까지 내시면 됩니다.

- 네?

- 지난번에 안 내셔서 다시 보내드린 거예요.

- 무슨 말씀을?

- 내시면 되는데.

- 아니 왜 자꾸 말을 끊어요.

- 그게 아니라 안내해 드린 거잖아요. 뭘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 다짜고짜 말을 끊으니 묻질 못하잖아요.

- 그게 아니라.

- 그게 아니면 뭐예요? 내가 뭣 때문에 전화했는지나 알아요?

- ....



방금 상대방과 통화를 마친 A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모릅니다. 저만 느낌이 싸한 게 아닌 듯합니다. 제 앞에 앉은 C 역시 저와 반응이 같습니다. 수습이라도 할 모양인지 A가 사무실 밖으로 나갑니다.



- 무슨 일이래요?

- 사과까지 했는데 기분 나빠서 얘기 못 하겠대.

- 그래요?

- 이상한 사람이야. 도와주겠다는데도 (무슨 내용인지) 알려주질 않네.



평소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할 말 위주로 일을 처리하던 A가 드디어 임자를 만났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전화 상대방에게 같은 주의를 받았는데 이번 상대는 곱게 넘어가지 않을 태세인가 봅니다.



A가 이 부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단서 그대로 A는 아직 자신이 처리할 업무에 숙지가 덜 된 상태입니다. 이럴 땐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게 최선의 정책입니다.



좀 안다고 나서서 상대방의 말을 끊거나 상대방의 요구 사항에 단순 짐작으로 답하면 하지 않아도 될 사과를 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금처럼 상대방이 작정하고 버릇 고치겠다고 나서서는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상대방의 처분만 바라야 할 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 사과했는데 과장을 찾더라고요. 미친 사람이에요.

- ...

- 마침 휴가 중이라 없다고 했죠. 궁금한 점을 일러주시면 답변드리겠다고 하자 다짜고짜 내일 사장실 찾아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이상자 아니에요?

- ...



문제의 실마리는 먼저 내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 역시 엉킨 부분을 살펴서 구조와 형태를 제대로 가늠해야 합니다. 섣불리 실 끝을 잡아 잡아당기면 실타래만 더 꼬이게 됩니다.



일이 터졌는데 수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건 하수가 하는 일입니다. 더욱이 전적으로 나는 피해자라고 단뜩 코스프레를 하고선 사무실 내 직원들에게 읍소하고 있으니 답이 없습니다. 답은 커녕 일만 더 키우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상대방이 본부장을 찾았습니다. 혹시나 상대방이 엄포를 놓은 데 그치겠지 싶은 일말의 시대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나 주워 먹던 개라 주인이 바뀌고 좀 살겠다 싶으니 주인을 무는 것. 이런 개는 내치는 게 답



- 어제 전화한 분이 본부장실에 들어가셨어요.

- 네.



본부장 비서실에서 사무실로 상황을 알려왔습니다. 설마 찾아오랴 싶었던 A와 과장 B가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본부장실로 서둘러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본부장 전화를 기다리겠답니다. 과장의 보고를 들은 부장 역시 아무 말이 없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본부장을 찾은 상대방을 다독일 본부장이 상대방과 대화를 끊고 과장을 찾을 일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화를 돋울 게 뻔합니다. 적어도 사태를 파악할 때까지는 잠자코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비서실에서 상대방이 방문한 사실을 알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간단한 상황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A와 B의 정신상태가 만신창이가 된 이유가 있습니다.



A와 B는 아침 출근 시각부터 상대방을 정신병자 취급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대응책 마련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늦게 서야 과장 B가 본부장실로 갔습니다.



상대를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상태에서 B가 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뜻을 가졌을 리 없습니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잔뜩 어깨에 힘주고 사무실을 나간 과장이 사과를 한들 그 사과를 상대방이 진정 어린 사과로 받아들일지 의문입니다. 직접 당사자인 A는 B와 함께 본부장실로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었던 듯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과 관계자 누구도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데 나아질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당사자인 A는 물론 A의 상관인 B조차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할 뿐입니다.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발화한 불이 건물을 휩싸는 건 한 순간입니다.





- 사장실에 손님이 오셨어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 먼저 사과했는데 막무가내로 시장실 찾아가겠다고 했어요. 문의사항을 발해주면 답하겠다고 했는데 말을 하지 않네요. 제게 버릇없다고만 했어요.



이후 상황은 일일이 옮기지 않겠습니다. 문제 발생 소지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지만 불가피하게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는 것이 수순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상대을 폄훼하는 발언이 이어져 온 것일까 싶겠지만 아닙니다.



전과 다른 분위기가 내부를 장악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그에 관한 빌미가 있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부서 분위기가 너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달여 전, 부장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잠시 후 부장이 고성을 질렀습니다. 수십 명의 직원이 있는 사무실에서 경위야 어떻든 부장이 고성을 지른 건 올바른 처신이 아닙니다. 나중에 내용을 듣고 보니 부장이 큰소리를 칠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상대방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부장이 공공 사무실에서 큰소리로 상대방과 싸우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비쳐야 했지만, 부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기양양해선 자신의 행동을 떠벌렸습니다.



그후 직원들이 전화 상대방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부장이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같거나 유사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수습하려면 부장부터 자세를 가다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 부장은 여전히 A를 두둔하고 과장 B의 처신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부장은 사장에게 A를 표창 대상자로 올렸습니다. 과연 누가 정신이 나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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