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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Oct 05. 2024

서촌기행


1.

아침 일찍 나선 벌내행 차 안. 서촌에 가려면 두 번 더 열차를 갈아타야 다. 경복궁역. 걸어서 15분 거리에 카페 나흐바가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다. 현재 시각 10시 10분.



2.

나흐바는 평일 오픈런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단다. 다 시나몬 롤 때문이다. 딸아이와 그것 먹으러 왔다. 딸아이와 데이트는 딸아이가 심심한 아빠와 놀아주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딸아이 편에선 내가 주로 혼자 카페를 다니는 게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같이 있어주지 않으면 필시 아빠가 무척 무료한 일상을 보낼 거라고 단정한 아이가 물었었다. 무척 대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아빠, 내가 놀아줄게. 어디 갈까? 아빠가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즐기는 줄은 몰랐을 터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딸아이와 데이트가 10년을 넘어섰다.



일정은 딸아이가 짰다. 예외 없이. 데이트라는 명목을 빙자한 사리사욕 채우기. ㅋ 동선은 인스타 감성이 충만한데 디저트까지 맛있는 카페라면 일단 원픽. 이어 먹고 싶은 것 많을 나이였으니 아빠 호주머니를 털 만반의 준비를 한 듯 제법 되는 식당을  골랐다. 그렇지 않을 때면 아빠를 생각해서라는 단서를 꼬박 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되는뎅~ 배를 채운 뒤 가는 곳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또 카페. 이 카페는 종전과 다른 감성과 맛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했다. 카페, 식당, 카페로 이어지는 동선. 아니다, 식당과 카페 사이에 샵이 끼어든다. 소품 샵일 경우도 있지만 의류 샵이 대부분이다. 오늘도 카페 나흐바를 찍고 달린다. 알리지 않은 참새 방앗간이 돌부리처럼  툭 튀어나올 수 있다. 대비하자. 


시계 빙향으로 위에서 두 번째 사진 위쪽에 문제의 시나몬 롤이 보인다. 크기는 어른 주먹 만하다.


역시나 오픈런에 불구하고 30분 넘게 웨이팅을 해야 했다. 악명은 뒷말을 낳고 뒷말을 들은 사람들이 악명의 본거지에 몰려드는 법이라고. 문제의 시나몬 롤 3개를 시키고 둘은 포장했다. 롤과 시나몬 카푸치노, 핸드드립 디카페인 커피로 테이블을 채웠다. 시그니처로 각광받는 시나몬 롤은 풍부한 맛이 일품이었다. 은은한 시나몬 향이 패스트리 안팎을 감싸며 풍미를 더했다. 달지 않아 중독성은 배가되었다. 핸드드립 커피는 산미가 강했다. 개인적으로 산미를 무척 좋아하는 터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며 마셨다. 딸아이도 시나몬 카푸치노에 반한 듯했다. 천천히 오래 마셨다.


나흐바, 종로구 누하동 45-2,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558m



3.

2차는 명란식당. 현재 시각 12시 15분이다. 다섯 번째 웨이팅에 이름을 올렸다. 명란식당의 주 메뉴는 명란 오차즈케와 오니기리다. 따로 아보카도 명란밥을 주문할 예정이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보카도 명란밥, 명란 오니기리, 명란 오차즈케


아보카도 명란밥은 주 재료인 명란과 아보카도의 조합이 훌륭했다. 명란의 톡 쏘는 짠맛을 아보카도가 손쉽게 중화해 주며 입맛을 자극했다. 곁들여 올린 계란 프라이의 속을 터뜨려 같이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마른 김과 물기 거의 없는 단무지, 된장국이 전체적으로 한상 밥 느낌을 주었다.



일본식 가정 식단의 특징은 단순 명료하다는 데 있다. 눈을 어지럽히지 않고 오로지 주 메뉴에만 주력하게 만드는 저  엄청난 구심력이라니. 일단 잡다하지 않아서 좋다. 넘쳐나는 시각정보로 미각이 제 기능을 못할 우려 또한 없다. 개조식 서술과 요약에 능숙한 일본의 맛을 오랜만에 보았다.


 명란식당, 종로구 체부동 123,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285m미터



4.

토오베. 전통 찻집. 지금 시각은 2시. 15분 전에 도착했다. 찻집의 특징은 차를 여러 번에 나눠 마실 수 있다는 거다. 주문한 찻잎을 다섯 차례 우릴 수 있으니 경제적이다. 다소 비싼 가격 때문에 하는 말이다.  



토오베는 5년 만에 왔다. 인테리어가 조금 바뀌었고 주인도 3명으로 늘었다. 머리를 바짝 민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 주인이 신경 쓰인다. 옷차림마저 영락없는 연변풍. 자리에 앉아 메뉴판에서 디저트와 두 종류의 차를 주문했다. 선결제라 카운터 앞에 섰다. 하필 문제의 남자 주인이 나섰다. 서울 말씨. 나긋나긋한 운율. 피식 웃음이 나고 말았다. 미안스럽게. 테이블 8개가 그새 꽉 찼다.



전통차의 녹진한 맛 근처라도 당도하려면 은 미각부터 찾는 일이 급하다. 카페인과 작별인사를 한 지 7일이 지났다. 내친김에 맥주도 끊었다. 마찬가지로 7일 전에.


토오베, 종로구 관훈동 118-36, 안국역 6번 출구에서 15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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