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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상 2] 피아 식별은 최소한의 조치

페이스 오프와 직권남용의 상관 관계

by 콩코드


전임 사장과 후임 사장 밑에서 승승장구하기란 화장만큼 쉽죠.


부장과 과장 사이에 사장의 지시사항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 중 백미는 이것. 엘리베이터 안.



- 사장이 뭘 몰라서 저러는 거라고.

- 하긴 해야겠지?

- 그러게요. 저도 마찬가지네요.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직원을 데리고 일을 하려니 일이 제대로 진척될 리 없다. 시한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일을 해내는 피동성을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저들 중 부장은 전 사장 밑에서 갖은 아양을 떨던 그야말로 '저쪽'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전 사장 임기 막판에 기자와 관련된 업무를 맡고 손을 썼는지 신임 사장이 취임하기 직전 업무 인수팀에 배치되었다.



그후 그가 부장배지를 달았다. 전임 사장 밑에 있던 사람도(당시 전횡의 일선에서 아부와 부역질로 요직만 거치던 사람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본인 입으로 그렇게 떠들고 다녔을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사리판단 없이) 등용은 조직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갈 통로를 막는다. 당사자가 고마워할까?



위에서 보듯이 스스로 그렇지 않음을 입증했는데 문제의 원인을 사장 탓, 사장의 판단 착오로 돌린 데서 알 수 있다. 태도는 마치 인성과 같아서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큰 문제는 속칭 '세상이 개벽해도 줄만 잘 서면 장땡'이라는 노예근성을 내부에 만연케하고 장땡의 대열에 서지 못한 다수에게는 열패감을 제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와 같은 우려가 오랜 세월 내부를 흔들었다.



사장의 평판이 취임 초기부터 현재까지 답보상태에 머물자 마침내 그가 사장을 뒤에서 은근히 까기 시작한 것이다. 제버릇 남 주지 않는다는 말 새겨듣자.



신상필벌이 바로 서지 않으면 저들은 기회를 엿봐 이간계라는 독소를 퍼뜨린다. 등뒤를 노리는 자는 늘 가까이 있다. 멀리서 찾는 한 그런 놈들은 한 놈도 거르지 못한다. 작금의 현실이다.





직무태만, 권한남용, 갑질의 3종 세트


부장이 응당해야 할 직원 근태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가장 기초적인 직무마저 해태하겠다는 뜻이다. 과연 부장은 직원들이 결재를 올리면 하루에 두 번 시간을 정해 결재하기 바빴다. 그러고도 올라오는 결재가 많다고 너스레는 기본. 한참 지나고 나서 결재한 내용이 화두로 떠오르면 그제야 왜 그걸 이제 말하냐는 식으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과연 그자가 부장의 자격이나 있는지 의뭉스럽다. 정말 짤짤이로 부장 자리를 땄나 싶은 게 위 결재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뚱 태도 말고도 여러 가지가 가관이다. 두고 만 볼 수 없던 와과연 과장이 나섰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부장의 문제를 지적했으나 부장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결재의 엄중성이라곤 전혀 없는 부장, 한심했다.



와 과장이 10일을 기간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을 떠나기 전에 와 과장이 부장에게 계획서를 올렸다. 부장은 와 과장의 계획에 훈수를 뒀다. 그 일로 부장은 와 과장이 언제 어디로 출장을 가는지 잘 알게 되었다.



출장 가기 전날 와 과장이 결재를 올렸다. 역시나 정해진 시각에 부장이 결재를 했다. 부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기다렸는데도 와 과장이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기회를 봐서 와 과장을 따로 불러 어쨌든 잘 다녀오라고 할 만했다. 부장은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전날 와 과장은 동생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급거 화장장을 구해야 했다. 추석 밑이라 화장장은 이미 꽉 찼다. 와 과장은 몸이 달았다. 더 정신 없었을 동생네 부탁을 조금도 외면할 수 없었다.



사방으로 전화를 거느라 와 과장은 그날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장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부장을 따끔하게 혼쭐낼 작정이었다.



배우지 못했으면 아랫사람에게라도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하물며 부장은 부서를 통할하는 위치에 있다. 결재를 소홀히 해서는 장차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부장 자신이 결재를 하고도 그 내용을 모르면 되겠느냐는 가르침을 한 번은 줘야 했다.



부장 성정에 아무 것도 배울리 없겠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었다. 장래 부장이 떠나도 직원들이 일하는 부서는 엄연히 버티고 서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서는 부장의 소유물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출장 마지막 날 와 과장이 돌아오는 길에 사무실 직원에게서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 과장님이 떠난 다음날 부장님제게 와서 과장 어디갔느냐고 묻던데요.

-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알려드려요.



부러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았다. 다음날 씩씩대던 부장이 큰소리로 와 과장을 호출했다. 동네 개 부르듯한 어감이었다.



- 와 과장, 어떻게 말도 안하고 출장을 가?



와 과장은 꼭지가 돌았다. 출장 계획을 부장이 이미 알고 있었고 결재까지 했었다. 정 궁금하면 와 과장이 사무실에 출근한 날 경위를 따져 물으면 될 일이었다.



굳이 와 과장이 없는 줄 알고도 와 과장 직속 직원에게 달려가 와 과장의 출장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묻는 게 온당한 태도인가. 직원들 들으라고 와 과장의 경우를 빗대 일장 훈시를 했을 터다.



- 결재 했잖습니까.

- 와서 다녀오겠다고 했어야지.

- 무슨 말씀입니까. 결재를 하고도 모르셨습니까.

- 뭐라고요?

-결재하지 않았느냐고요.

- 두고 봅시다.



그후로 부장은 권한을 치졸하게 사용했다. 와 과장의 표창 상신을 거부한 게 신호였다. 표창은 부서에서 돌아가면서 상신했다.



- 무슨 잘 한 게 있다고?

- 뭘 잘했는데.



표창을 올리려는 직원에게 부장이 호통을 쳤다. 부장이 부임하고 겨우 두 달이 흘렀을 때다. 겨우 두 달만에 신상을 다 파악했다는 말인가. 누가봐도 와 과장을 대놓고 모욕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외 부장의 직권남용과 갑질을 비롯한 전횡은 필설로 옮기지 않겠다. 참 비루한 인간이다. 부장이 무슨 대단한 권력이라고 고작 남을 공공연히 모욕을 주는 데 사용하다니. 그는 그럴 위인이었다.



세상엔 무례한 인간들이 많다. 하지만 갑 오브 갑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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