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늘 그 안의 얼굴만 보게 된다.
세계는 반사된 이미지가 아니라,
새롭게 그려지는 상상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진짜인가?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언론이 구성하고,
플랫폼이 편집하고,
알고리즘이 정렬한 ‘재현된 세계’**다.
우리는 그 안에서
선택하는 자가 아니라,
선택을 부여받는 자가 되곤 한다.
‘거울’은 이미 일그러져 있다.
그 왜곡된 반사 속에서
우리는 진짜를 상상할 용기를 잃어간다.
상상력은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현실을 바꾸는 힘은
지식보다도, 기술보다도,
상상에서 나온다.
흑인 소녀가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꿈꾼 사람들,
누구도 다리를 건널 수 없던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널 방법을 제시한 사람들,
탈성장과 공유경제를 말하는 활동가들,
생태적 전환을 실험하는 도시 건축가들.
그들은 현실을 분석하기보다,
세계 자체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철학은 분석의 도구가 아니라,
상상의 발화점이 되어야 한다.
파편화된 세계를 넘어, ‘함께 꾸는 꿈’으로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진실, 너무 많은 목소리,
너무 많은 데이터에 둘러싸여
‘공통의 꿈’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공유된 상상’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집을 가질 수 있는 도시,
돈보다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
경쟁이 아닌 협력이 구조가 되는 경제,
데이터가 아닌 기억이 살아 있는 인간 공동체.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능한 미래의 프로토타입이다.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
(1) 두려움을 넘어서기
상상은 때로
‘허황된 희망’으로 조롱받는다.
그러나 조롱은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두려움을 넘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 비판을 멈추지 않기
상상이 이상에 머물지 않으려면
현실의 균열을 끝까지 응시해야 한다.
비판 없는 상상은 공상이 되고,
상상 없는 비판은 냉소가 된다.
(3) 함께 이야기하기
상상은 혼자 꾸는 꿈이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다른 세계를 말해볼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그것은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맺으며 ― 깨진 거울 위를 걷는 법
동굴을 빠져나온 우리가
처음 본 것은 찬란한 빛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던 일그러진 거울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 조각들 위를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사유를 갖게 되었다.
상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이제,
다시 그려야 한다.
이 세계와, 우리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