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일기(2020년 11월 19일)
박근혜 정부 시절 우민은 한국사회에 사흘이 멀다 하고 쏟아지는 갑질 사태를 보면서 의아했다. "얼마면 돼"라며 미리 수표를 끊어주고 사적 린치를 가하거나 백화점 직원이나 항공사 직원이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았다고 무릎 꿇리고 뺨을 때리며 진상을 부린다는 따위의 뉴스들. 아니 왜 갑자기 사람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뻔뻔해지지? 예전엔 주변 눈을 의식해서라도 저렇게 대놓고 갑질은 못했는데 왜 갑자기 저렇게 본색을 드러내는 거지?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서 우민은 갑자기 그 모든 현상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똥파리들은 똥냄새를 맡으면 한꺼번에 꼬인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는 딸을 둔 여성이 권좌의 배후에서 국가 대소사를 주물렀으니 전국의 똥파리들이 얼마나 신났겠는가. 716 시절도 마찬가지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절규 앞에서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대놓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똥파리들이 슬을 까며 환장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우민은 진실된 경상도 사내라 믿었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716503이 쇠고랑을 차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좀 더 진실되고 겸허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믿음이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어했고 그들의 열혈 지지자들은 그런 그들의 후안무치와 오만에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외치며 환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어떤 사람이 표방하는 가치와 구체적 실천이 이율배반적인 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증세는 갈수록 심각해져 갔는데 초엘리트층이면 자식을 명문대에 집어넣기 위해 부모 된 마음으로 허위와 협잡을 벌이는 게 너무도 상식적인 거 아니냐고 반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급기야는 수천 명에게 수조억 원대의 사기를 쳐 감옥에 가있는 이들이 진실과 정의의 사도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양고기를 판다하고 개고기를 내놓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양두구육의 시대이자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정치가 부패하니 다시 똥파리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가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진위가 뒤바뀌고, 선악이 뒤섞이고, 미추가 범벅이 되어버렸다. 우민은 그 심각한 징후를 실체가 탄로 난 어떤 요승을 옹호하는 글에서 발견했다.
종교란 것이 원래 사람들에게 위로를 안겨주면 그만인 것을 종교인에 대해 너무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걸 지키지 못했다고 젊은 승려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다는 주장이었다. 그 눔의 일관성에 대해선 박수를 쳐주고 싶긴 하지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소리가 아닌가.
아마도 그의 모습에서 젊고 잘 생기고 최고 학벌에 바른 소리를 잘해 대중의 인기를 업고 고공행진을 하다가 추락한 어느 대학교수를 떠올렸나 보다. 그래서 그를 옹호하는 논리를 끌어다가 이번엔 혹세무민 한 돈으로 호의호식하던 땡중까지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라는 게, 종교라는 게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뭐가 중요하냐고 했을 때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누굴까? 716503 시절 갑질 하고 다니던 똥파리들이다. 너희들 모두 강남 건물주가 되고 싶은 속물들 아냐, 그런데 부모 잘못 만나 그게 안 되는 것뿐인데 날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어? 니들도 속으론 남산이 보이는 서울의 대형 아파트에서 살고 싶잖아 그런데 외모가 안되고 말발이 안돼서 거기 그렇게 처박혀 살고 있는 거잖아. 괜한 질투심에 시비 걸고 뒷다마 까는 니들이 관종이야.
우민은 새삼 공자의 위대함을 재발견한다. 정치란 바른 것이고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라는 그 짧은 일갈을 21세기에 사는 이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러면서 공자를 팔고, 부처를 팔고, 예수를 판다. 이들 성현이 되살아나 자신의 제자를 자처하는 그들의 행각을 보고 뭐라 할까.
걱정하지 마시라. 똥파리들에겐 이반 카라마조프의 '대심문관'이란 비장의 카드가 있다. 공자건 부처건 예수건 감옥에 처넣고 밤에 몰래 찾아가 이렇게 말하리라. "아니 우리끼리 잘해 가고 있는데 왜 지금 나타나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려는 겁니까? 다시 하늘나라로 보내드릴 테니 나중에 다시 오시라."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