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양화(陽貨) 제6장
자장이 공자에게 어짊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 일을 세상에 널리 실행할 수 있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다.” 자장이 자세한 설명을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란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베풂을 말한다. 공손하면 모욕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이 따르고, 미더우면 남이 일을 맡겨주고, 민첩하면 공을 세우고, 베풀면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爲仁矣.”
자장문인어공자 공자왈 능행오자어천하위인의
請問之. 曰: “恭, 寬, 信, 敏, 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청문지 왈 공 관 신 민 혜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공자가 제자에게 맞춤형 응답을 펼치는 또 다른 장면입니다. 막내 제자뻘인 자장이 어짊에 대해 묻자 공자는 다섯 가지를 힘써 실행하라고 말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미더움(信), 민첩함(敏), 베풂(惠)입니다. 다른 제자가 물었을 때와 사뭇 다릅니다.
수제자였던 안연이 물었을 때(12편 안연 제1장)는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克己復禮)’라 답했습니다. 제자 중 수완이 가장 뛰어났던 자공(15편 위령공 제24장)과 덕행에 있어 안연에 버금갔던 중궁(12편 안연 제2장)이 물었을 때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이 당하게 하지 말아야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가르쳤습니다. 또 근심걱정이 많아 말도 많았던 제자 사마우(12편 안연 제3장)에게는 ‘말을 삼가는 것(其言也訒)’이라 했고, 용맹하지만 우직했던 제자 번지가 물었을 때(12편 안연 제22장)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네 제자의 개성에 맞춘 맞춤형 대답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겐 하나의 키워드로 여러 관문을 열 수 있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답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자장이 물었을 때는 무려 다섯 가지의 덕목으로 이를 분산시켰습니다. 그래서 평소의 공자 말씀과 다르기에 위문(僞文)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말년 제자 중 가장 어렸던 자장의 질문을 답할 때면 유독 사악(四惡)과 오미(五美) 식으로 핵심 내용을 숫자화 하거나 나열식으로 풀어낼 때가 많았습니다. 자장이 그만큼 정리와 종합의 대가였기 때문입니다. 또 자장은 안회나 염옹처럼 덕행을 중시한 수제(修濟)파가 아니라 정치를 중시한 치평(治平)파였습니다. 그래서 자장의 어짊이 ‘어진 정치’를 겨냥한 것임을 알고 어진 정치를 펼침에 있어 중요한 다섯 가지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진 정치를 위한 오자(五者)와 좋은 정치를 위한 오미를 비교해볼까요? 20편 요왈 제2장에 등장하는 오미는 베풀되 헤프지 않은 것(惠而不費), 부리되 원망 사지 않는 것(勞而不怨), 바라되 탐하지 않는 것(欲而不貪),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은 것(泰而不驕), 위엄 있으되 사납지 않은 것(威而不猛)입니다.
오자 중 첫 번째 공손함(恭)은 태이불교(泰而不驕)와 상통합니다. 세 번째 미더움(信)은 노이불원(勞而不怨)에 부합합니다.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원망 사지 않으면서 부릴 수 있는 법이니까요. 다섯 번째 베풂(惠)은 혜이불비(惠而不費)에 바로 적용 가능합니다. 살짝 결이 다르긴 해도 두 번째 관(寬)을 욕이불탐(欲而不貪)과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탐욕을 부리지 않아야 관대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자의 민첩함(敏)과 오미의 위이불맹(威而不猛)은 맥락이 전혀 다릅니다. 위엄 있되 사납지 않은 사람을 어질다고 말할 순 있겠지요. 하지만 민첩함이 어질다는 개념에 포함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에 대한 돌파구는 눌언민행(訥言敏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빠른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어짊에 해당합니다. 특히 그 행이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고치는 과즉개지(過卽改之)와 연결될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어짊을 물었을 때 민첩함으로 답하고 좋은 정치를 물었을 때 위이불맹으로 차이 나게 답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위이불맹은 정치의 외양이나 태도와 관련 있습니다. 공자가 그것을 설명할 때 ‘의관을 바로 하고 곁눈질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으니 백성에게 비치는 위정자의 풍모와 관련된 발언입니다. 반면 민첩함은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나 자세와 관련돼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긴 한데 내심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그 자신을 채찍질해야 민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정치에 종사하고자 하는 의욕이 컸던 자장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자장은 스승의 이런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는 ‘순자-십이자편’에서 자장학파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서도 여지없이 확인됩니다. 다른 유학파에 대해선 점잖은 양 겉모양에 치중하지만 우쭐대기 일쑤라 비판하는 와중에 유독 자장학파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경박하다 할 정도로 말이 빠른 만큼이나 발걸음도 빠르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자장학파는 공문(孔門) 최고의 민첩함을 자랑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