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29장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자왈 인능홍도 비도홍인
도(道)는 천지만물이 어떻게 형성되고 형성되며 변화하고 소멸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원리입니다. 이와 달리 덕(德)은 내 속에 얼마나 많은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느냐는 마음의 크기, 그릇의 크기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주관적인 덕을 넓히는 것은 이해되지만 객관적인 도를 넓힌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니 넓어질 것도 좁아질 것도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지는 않고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그 감춰진 도를 발견하고 그 원리를 깨치는 것은 사람입니다. 도가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도를 깨치는 순간 일종의 윤리적 전회(轉回)가 발생합니다. 도를 깨치지 못하는 사람들만 넘쳐날 때 도의 발현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삼림이 파괴되고, 동식물이 멸종되고,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넘쳐나게 됩니다. 반대로 도를 깨친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면 도의 발현은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를 깨친 사람은 이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변에 널리 퍼뜨리기 마련입니다. 이를 통해 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발생합니다. 도는 그대로이지만 그것을 터득하고 활용하는 문화의 융성이 일어납니다.
도가(道家)에서는 이런 현상을 도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도를 깨쳤다고 호들갑 떠는 인간들이 가소로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인간이 도를 터득하든 아니든 도는 그대로이니까요. 그래서 도가 인간을 넓힌다고 말합니다. 반면 유가에서는 이를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분명 도는 그대로이지만 그를 터득한 인간이 많아질수록 그 원리의 복제와 확장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도를 넓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개척한 유가의 아름다움이 눈물겹고 눈부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도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 입각해 도를 이 땅에 실현시키고자 분투하기 때문입니다. 도는 인간이 그러든 말든 초연하고 심지어 태연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인간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펼쳐야 합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곡인 ‘불가능한 꿈(Impossible Dream)’의 가사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견뎌내며, 손 닿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있는 힘껏 팔을 뻗는’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를 넓힌다는 뜻에는 이처럼 비극적 아름다움이 숨어있습니다. 거기엔 훗날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내재돼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주체의 윤리적 전회를 통해 운명을 껴안고 적극적으로 살아내라. 운명은 나의 이런 선택에 초연하고 태연하겠지만 이를 통해 윤리적 주체로 거듭 난 나는 오히려 즐겁게 그 비극적 운명을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