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와 인내부족은 난을 부른다

15편 위령공(衛靈公) 제2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교묘하게 꾸민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참지 못해 벌인 작은 일이 큰일을 어지럽힌다.”


子曰: “巧言亂德, 小不忍則亂大謀.”

자왈 교언란덕 소불인즉란대모



이를 처세술이나 도덕적 경구로만 받아들이면 심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역사의 거울에 비춰봐야 그 의미가 생생하게 다가섭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자는 어지럽힐 란(亂)입니다.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대구를 이루게 만드는 단어이니까요. 그럼 공자는 왜 교언과 소불인이 왜 난을 불러온다고까지 표현한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교언입니다. 1편 학이 제3장과 17편 양화 제17장에 ‘교언령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으로 두 차례나 등장합니다. 앞서 ‘말 잘하는 건 죄가 없다’에서 살펴봤듯이 교언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아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언란덕’은 아부하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 말이 사람들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덕을 어지럽힌다는 뜻입니다. 아부성 발언을 많이 듣게 되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고깝게 여기게 되고 부지불식간에 차별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춘추오패의 첫손가락에 꼽히는 제환공(강소백)은 명군이었지만 남달리 총애하는 3명의 측근이 있었습니다. 제환공을 가까이서 모시고 싶어 스스로 거세하고 환관이 된 수조(竪刁, 수초‧竪貂로도 표기), 제환공이 사람고기를 못 먹어봤다고 하자 세 살배기 자신의 아들을 죽여 고기로 진상한 역아(易牙), 위(衛)나라 제후의 아들로 볼모로 제나라에 보내졌지만 제환공의 말동무가 되는 일이 중하다며 15년간 위나라를 한 번도 찾지 않은 위개방(衛開方)입니다. 제환공을 패자로 만든 명재상 관중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후임으로 그 셋을 거명하는 제환공에게 절대 불가하다고 밝혔다.


수조에 대해선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할 수 있는 자라면 능히 다른 사람에겐 더 심각한 해를 가할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역아에 대해선 “사람이면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기 마련인데 그 자식에게 독하게 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겐들 독하게 굴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위개방에 대해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모를 사랑하기 마련인데 15년 넘게 부모를 내팽개친 사람이라면 누구한테든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그들의 준동을 막을 수 있었으니 제환공이 예뻐해도 모른 척해줬지만 자신이 죽고 난 뒤 그들을 중용하면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제환공은 처음엔 관중의 충언을 좇아 그 셋을 중용하지 않고 멀리 내칩니다. 하지만 늙어서 총기를 잃게 되지 입안의 혀처럼 구는 그들을 다시 가까이 두고 수조가 바치는 여색, 역아가 바치는 산해진미, 위개방의 립서비스에 푹 빠져 살게 됩니다. 관중이 죽고 2년 뒤 제환공이 시름시름 앓게 되자 셋은 이용가치가 없어진 제환공의 침궁 출입을 막은 채 이전투구에 가까운 궁중암투를 벌였습니다. 그로 인해 살아서 온갖 영화를 누리던 제환공은 병상에 누운 채 굶어 죽었고 죽은 뒤에도 67일이나 방치돼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짓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뤘지만 같은 신세가 되고마는 진시황의 예고편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제나라는 제환공의 다섯 아들이 골육상쟁을 벌이는 통에 제후국의 맹주의 자리에서 추락하고 다시는 그 전의 위용을 되찾지 못하게 됐습니다.


혼란에 빠진 동주시대 구세주처럼 등장해 온갖 칭송을 받았던 제환공은 결국 말년에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교언을 일삼는 이들에게 넘어감으로써 자신과 나라를 모두 망치고 만 것입니다. 제환공은 공자가 태어나기 92년 전에 죽은 인물입니다. 따라서 공자의 군자학 연구의 중요한 사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자는 춘추오패 중 제환공과 진문공을 비교하면서 제환공은 바르면서도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14편 헌문 제16장). 하지만 말년의 추락을 보면서 교언란덕의 대표 사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불필요한 말을 꺼내는 바람에 큰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큰일을 앞두고선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데 아주 사소한 실수로 인해 큰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삼국지’의 맹장 장비는 의형제인 관우가 죽자 유비가 준비한 복수혈전의 선봉에 서기로 했으나 출전도 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 준비가 부실하다고 휘하 장수들을 혹독하게 매질했다가 잠든 사이에 목이 날아간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 때도 허다합니다만 전국시대 7웅의 하나로 꼽혔던 위나라가 대표적입니다. 북방의 강대국이었던 진(晉)이 분열해 성립한 3국의 하나였던 위나라는 초창기 위문후와 위무후가 다스리던 시절 훌륭한 인재를 대거 기용했습니다. 자하의 제자로 알려진 이극, 서문표, 오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제일 잘 나갔습니다. 중원의 한 복판에 위치해 사통팔달했고 인구도 가장 많았습니다.


하지만 위혜왕(위앵‧‘맹자’의 양혜왕과 동일인) 시대부터 점차 인재 감별력을 잃고 수많은 인재를 박대하고 모욕을 줘 내쫓은 결과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초나라로 넘어간 명장 오기, 진시황의 통일대업의 기초를 쌓은 진나라의 3대 재상 상앙, 장의, 범수, 제나라 장수가 되어 위나라를 연전연패시키고 위나라 태자까지 포로로 붙잡은 손빈,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연나라의 명장 악의가 모두 위나라에서 벼슬을 살다가 사소한 일로 미운털이 박혀 내쫓긴 인재였습니다.


이중 손빈과 범수의 사례만 보겠습니다. 손자병법을 지었다고 알려진 손무의 5대손이라는 손빈은 제나라 사람이지만 동문수학하며 병법을 배운 방연의 추천으로 위나라의 장수로 발탁됩니다. 하지만 손빈의 재주가 자신보다 출중한 것을 질투한 방연의 무고로 반역자로 몰려서 두 무릎뼈가 으깨지고 얼굴에 먹칠을 당하는 횡액을 겪게 됩니다. 절치부심해 자신의 똥오줌까지 먹어가며 미친 척 연기한 덕에 고국인 제나라로 돌아가게 된 손빈은 제나라 대장인 전기의 참모가 돼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 군대를 번번이 패퇴시킨 끝에 방연을 죽이고 포로로 잡힌 위나라 태자는 자결케 합니다.


범수는 원래 위나라 사람으로 위나라 재상이던 위제 아래서 하위 관료로 있다가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제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제양왕이 그의 재주를 눈여겨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하지만 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여 이를 사양합니다. 제양왕이 아쉬운 마음에 황금 10근을 선사하며 환송연회까지 베풀자 황금은 사양하고 연회에만 참석했습니다.


사절단의 단장인 수고가 이를 고깝게 여겨 위제에게 고자질했고 위제는 범수를 배신자라 단정하고 여러 빈객을 불러놓고 그에게 죄를 자백하라면 혹독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범수는 일부러 죽은 척했고 위제는 그런 범수를 변소에 던져 놓고 하객들에게 그 위에 오줌을 싸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충성심의 대가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은 범수는 위나라를 탈출해 진나라로 넘어가 재상이 된 뒤 위나라를 상대로 일대 복수를 단행하게 됩니다.


위나라는 천국시대 들어 천하를 도모할 나라로 첫손가락에 꼽혔습니다. 하지만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소한 의혹만으로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짓을 되풀이해 저지르다가 결국 대업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위나라의 사례는 공자 사후에 벌어집니다. 교언란덕이 과거 제나라의 사례를 염두에 뒀다면 소불인란대모는 미래 위나라의 사례를 예언한 것이라 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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