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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Jan 02. 2021

공자가 남긴 '정치 9계명'

20편 요왈 제2장

  자장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에 종사한다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 미덕을 높이고, 네 가지 악행을 물리치면 정치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다.” 

  자장이 물었다. “다섯 가지 미덕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베풀되 헤프지 않고, 부리되 원망을 사지 않으며, 바라되 탐하지 않고,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 있으되 사납지 않다.”

  자장이 물었다.“어떻게 해야 베풀되 헤프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백성의 이익에 근거하면 베풀되 헤프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부릴만한 일로 부린다면 누가 원망을 하겠느냐? 어질어지기를 바라서 어질어진다면 그밖에 탐할 게 있겠느냐? 군자는 사람의 많고 적음, 일의 크고 작음을 가라지 않고 그 무엇도 업신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군자는 의관을 바로하고 곁눈질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이를 우러러 보고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위엄 있되 사납지 않다는 것 아니겠느냐?” 

  자장이 물었다. “네 가지 악행이란 무엇입니까?” 공자 가라사대 “교화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虐)하다고 하고, 방침도 일러주지도 않고 성과를 요구하는 것을 포악(暴)하다 한다, 일이 닥친 뒤 뒤늦게 지시해놓고선 기한 내 완수를 요구하는 것은 도적질(賊)이요, 마땅히 내어줄 것을 내어주면서 오히려 인색한 것은 완장질(有司)이니라.”


  子張問於孔子曰: “何如斯可以從政矣?” 子曰: “尊五美. 屛四惡, 斯可以從政矣.”

  자장문어공자왈     하여사가이종정의     자왈    존오미  병사악  사가이종정의

  子張曰: “何謂五美?” 子曰: “君子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자장왈   하위오미     자왈    군자혜이불비   노이불원   욕이불탐   태이불교  위이불맹

  子張曰: “何謂惠而不費?” 子曰: “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擇可勞而勞之, 又誰怨? 欲仁而得仁, 又焉貪? 君子無衆寡, 無小大, 無敢慢, 斯不亦泰而不驕乎? 君子正其衣冠, 尊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斯不亦威而不猛乎?” 

  자장왈   하위혜이불비     자왈    인민지소리이리지    사불역혜이불비호    택가로이로지    우수원    욕인이득인   우언탐  군자무중과   무소대   무감만   사불역태이불교호    군자정기의관   존기첨시   엄연인망이외지  사불역위이불맹호

  子張曰: “何謂四惡?” 子曰: “不敎而殺謂之虐, 不戒視成謂之暴, 慢令致期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자장왈   하위사악    자왈     불교이살위지학   불계시성위지포    만령치기위지적   유지여인야   출납지린 위지유사  



  공자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군자학(君子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군자가 될 수 있느냐를 가르치는 것인데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개개인의 윤리적 가치판단과 실천을 다루는 것입니다. ‘대학’에 등장하는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라 하여 ‘수제학(修齊學)’이라 부릅니다. 둘째는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다루는 통치와 정치의 영역입니다. 역시 ‘대학’에 등장하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영역이라 하여 ‘치평학(治平學)’이라 칭합니다.  

    

  공자의 제자는 양자를 겸비해야 했지만 그중에서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수제파와 치평파로 분류됩니다. 수제파가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에 세거지로 삼은 증자(曾子) 학파가 많다면 치평파는 제나라의 싱크 탱크였던 직하학궁을 이끈 순자(荀子)로 이어졌다하여 전자를 노학(魯學), 후자를 제학(齊學)이라고도 합니다. 


  공자의 말년 제자인 증자의 학맥은 공자의 손자이자 ‘중용’의 저자로 알려진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孟子)로 이어집니다. 송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가 공자의 적통이라고 치켜세운 학맥입니다. 비슷한 연배의 자하, 자유, 자장의 학맥은 보다 광범위한데 병가의 오기와 법가의 이극 등을 거쳐 순자에게서 집대성됐습니다. 그런데 순자의 문하에서 법가인 한비자가 나왔다 하여 후대 성리학자들이 배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후대의 역사적이고 이념적 분류일뿐입니다. 논어에서 치평학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진 제자는 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가 공자보다 31세 적은 자공(子貢)이라면 다른 한 명은 48세 적은 막내제자뻘 자장(子張)입니다. 공자의 문하에서 똑똑하기로 이 둘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자칫 재승박덕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자공을 견제하는 데 공자가 직접 나선다면 훨씬 더 어린 자장을 견제하는 건 그 선배나 동료 제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순서상 논어에서 공자에게 최후의 질문을 던지는 제자가 바로 자장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이렇게 상상하곤 합니다. 말년에 죽음을 앞둔 스승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 공자 학단에서 스승의 귀염을 담뿍 받는 영특한 제자 하나를 뽑아 스승을 상대로 최후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합니다. 공자의 손자뻘이지만 공자 학단에서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자장이 선발됩니다. 


  자장은 군자학의 핵심을 치평학으로 여겼기에 곧바로 정치의 요체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한 공자는 자장의 공손한 질문을 듣자 바로 그 핵심을 간파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의 요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오미(五美)와 꼭 피해야 할 사악(四惡)으로 나눠 간명하게 요약해줍니다. 말년의 공자가 남긴 정치 9계명인 셈입니다.  

      

  다섯 가지 미덕으로 번역할 오미는 베풀되 헤프지 않은 것(惠而不費), 부리되 원망 사지 않는 것(勞而不怨), 바라되 탐하지 않는 것(欲而不貪),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은 것(泰而不驕), 위엄 있으되 사납지 않은 것(威而不猛)입니다. 민주정치 시대에도 꼭 필요해 보이는 덕목입니다. 네 가지 악행이라 할 사악은 교화시키지 않고 바로 죽이는 것(不敎而殺), 일러주지 않고 성과만 중시하는 것(不戒視成), 졸속 명령을 내려놓고 기한 내 완수를 요구하는 것(慢令致期), 당연히 줘야 할 것을 주면서 인색하게 구는 것(猶之與人也 出納之吝)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직상생활에서 일상이 되어버리는 악행입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오미는 곧 알뜰한 살림살이로 국민의 복리후생을 챙기는 것, 공정하게 4대 의무를 부과하는 것, 공직기강을 확립하는 것, 정부 밖 국민과 외국에게 보여줄 대외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 정부 내 공무원에 대한 대내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 첫손가락으로 뽑은 것이 국민의 민생복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원칙은 특정인이나 특정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근거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납세와 군역 같은 4대 의무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는 현대의 ‘작은 정부론’과 연결됩니다. 즉 복지국가를 지향하되  '작은 정부’를 통해 그를 이루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공직기강에 대해선 오직 어짊만 추구할 뿐 사심을 채우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삶을 강조한 것입니다. 리더십은 둘로 나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국과 국민에게 보여줄 대외적 리더십과 정부 내 공직자를 이끄는 리더십입니다. 전자에 대해선 태산처럼 듬직하되 아집에 빠지지 말라 하고, 후자에 대해선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게 이끌어야지 윽박지르고 겁줘선 안 된다고 경계합니다.   

        

  사악은 오미의 반대에 머물지 않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쉬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꿰뚫습니다. 첫째는 무분별한 살생(虐) 금지입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면 정부 차원에서든 민간기업 차원에서든 납득하기 어려운 정리해고자를 만들지 말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구조정이라는 미명으로 죄의식을 덜어내려 하지만 누군가의 밥줄을 끊는 것은 곧 그의 생명줄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이니까요. 둘째로 지침이나 원칙을 제시하지 않고 “오직 결과로만 말하라”하는 성과지상주의(暴)에 대한 경계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성과를 가져오라 부하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오늘날 수많은 기업체의 직장상사도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셋째는 졸속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敵)에 대한 경계입니다. 이해찬 식 교육개혁이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국가적 중대사를 졸속으로 결정하고 단기간에 밀어붙이지 말라는 겁니다. 마지막은 ‘완장질(有司)’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공직자로서 의무를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욕으로 바꿔 치지 말라는 경계입니다. 오늘날 부하직원과 하청 기업체에 대한 갑질에 둔감하기 십상인 대기업 오너와 임원이 새겨야 할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를 감안해보면 정치 9계명을 넘어 오늘날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새겨들어야할 9계명이기도 합니다.    


  원문에서 가장 어려운 한자어는 유사(有司)일 겁니다. 고대 중국에서 창고지기에 해당하는 관직입니다. 군사적 직책에 많이 쓰이는 사(司)가 들어간 것으로 봐서는 군량미 관리와 보급을 맡은 일에서부터 출발한 직책으로 보입니다. 후대로 가선 흉년 때 구휼미를 배포하는 일도 맡은 것 같은데 그때부터 완장질을 일삼은 것 같습니다. ‘완장 차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표현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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