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 요왈(堯曰) 제1장
요임금이 이르기를 "자, 너, 순아! 하늘이 정한 운수가 네 몸에 있으니, 그 중용을 취하는데 집중하라. 천하의 백성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복록도 영원히 끊어지리라." 순임금이 왕좌를 우임금에게 물려줄 때에도 똑같은 명을 내렸다.
은상의 탕왕(이름이 이·履)이 하늘의 상제에게 고했다. "소자 이가 삼가 검은 황소를 제물로 올리며 빛나고 크신 상제님에게 아뢰옵니다. 죄가 있다면 감히 용서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상제의 신하는 잘못을 감출 수 없습니다. 상제의 마음이 가려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몸에 죄가 있다면 만백성의 잘못과 무관하나 만백성의 죄는 곧 제 자신의 죄이옵니다."
주나라는 관직을 크게 베풀어 훌륭한 사람이 부귀해졌다. (무왕이 상제에게 말하기를) “주 왕실에 친족이 많다 한들 어진 사람만 못합니다. 백성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 책임은) 제 한 몸에 있습니다.” 저울과 되(도량형)를 바로잡고, 법도를 잘 살피고, 폐했던 여러 벼슬을 복구하니, 사방의 정치가 제대로 행해졌다.
망했던 나라(제후국)를 부흥시키고, 끊어진 대를 다시 이어 주고, 숨은 인재를 등용하니 천하의 민심이 돌아왔다. 소중한 것은 백성이요 식량이며, 상례이고 제사이다.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고, 미더우면 백성이 믿고 일임하며, 민첩하면 공을 세울 것이고, 공정하면 (백성이) 기뻐할 것이다.
堯曰: “咨爾舜! 天地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舜亦以命禹.
요왈 자이순 천지력수재이궁 윤집기중 사해곤궁 천록영종 순역이명우
曰: “予小子履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왈 여소자리감용현모 감소고우황황후제 유죄불감사 제신불폐 간재제심 짐궁유죄 무이만방 만방유죄 죄재짐궁
周有大賚, 善人是富. "雖有周親, 不如仁人, 百姓有過, 在予一人." 謹權量, 審法度, 修廢官, 四方之政行焉.
주유대뢰 선인시부 수유주친 불여인인 백성유과 재여일인 근권량 심법도 수폐관 사방지정행언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天下之民歸心焉. 所重, 民食喪祭. 寬則得衆, 信則民任焉, 敏則有功, 公則說.
흥멸국 계절세 거일민 천하지민귀심언 소중 민식상제 관즉득중 신즉민임언 민즉유공 공즉열
요왈 편의 제1장은 공자가 이상화했던 ‘벨 에포크(Bell Epoch)’ 시대의 정치를 묘파합니다. 요임금과 순임금, 하의 창업주 우왕, 은상(은나라 또는 상나라)의 창업주 탕왕, 주의 창업주 무왕의 시대입니다. 요순과 우왕 시대의 정치의 핵심은 3장에서 언급된 지명(知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 핵심을 적절히 운용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대학’에서 중용(中庸)이라고 언급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첫 장은 왜 등장하는 걸까요? 첫 장부터 읽어선 도대체 그 이유를 알기 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왈 편 마지막 장인 제3장을 읽으면서 3개의 키워드를 얻었습니다. 각각 천(天) 지(地) 인(人)에 대응하는 명(命)과 예(禮)와 인(人)입니다. 그 3개의 키워드를 간직하고 되풀이해 읽다 보면 안갯속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은상의 탕왕 시대 정치의 핵심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역성혁명을 감행했기에 임금이 죄를 저지르면 하늘이 벌을 내리리라는 순명의식이 뚜렷합니다. 그래서 은상시대의 왕에게 하늘을 뜻을 읽는 천문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역성혁명으로 성립한 주나라에서 변화가 발생합니다. 만인의 죄가 곧 임금의 죄라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은 계승하되 도량형을 통일하고 제도와 법도를 정비하는 ‘땅의 일’이 주요 업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정(政)이란 단어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지상의 척도이자 문명질서로서 공자가 강조한 예(禮)입니다.
문장의 길이도 요순우 때보다 탕왕 때가 더 길고 주 무왕 때는 2배나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를 되풀이 읽다 보면 이를 기록한 사람(기자·記者)의 깨달음이 증폭되면서 일종의 윤리적 전회가 이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순우 때에 이어 탕왕 때도 하늘(天)이 중요하다가 무왕 때 이르러 지(地)의 중요성에 눈 뜬 기자는 주나라의 업적을 나열하다가 마지막 단락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人)임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소중 민식상제(所重 民食喪祭)’라는 구절에서 그러한 인식 지평의 확대가 발견됩니다. 전근대 시대에는 이를 민식(民食), 상(喪), 제(祭) 3가지라고 봤습니다. 백성의 먹거리, 상례와 제례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중국 현대 정치사상가 리쩌허우(李澤厚)의 해석을 쫓아 백성(인권), 그들이 먹고사는 일(경제), 공동체 구성원을 상실했을 때 추모로서 상례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제례의 4가지로 풀어봤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드라마틱한 해석이 도출됩니다.
요순우와 은상 때 중요했던 것은 하느님 곧 상제(天帝)요 그에 대한 제례였습니다. 그를 통해 하늘을 뜻을 살피는 것이 제왕의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나라 때 이르면서 그 하늘의 뜻을 살피는 것이 곧 민심(民心)을 통해 반영됨을 기자가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전까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짊어진 부정적 존재였던 민(民)이 선인(善人)과 인인(仁人)으로 등장하다가 급기야 천하만방의 민심(民心)으로 부상합니다. 그리하여 그 깨달음이 ‘소중 민식상제’로 요약되면서 한때 가장 중했던 제(祭)가 맨 뒤로 밀려나고 민(民)이 첫머리를 장식하는 대역전이 이뤄집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강조된 관대함(慣), 미더움(信), 민첩함(敏), 공정함(公)은 모두 사람됨에 관한 것이니 天과 地를 넘어 人의 중요성이 논어의 시대 주요 화두가 됨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논어의 최후의 장에서 강조한 지명(知命) 지례(知禮) 지언(知言) 중에서 왜 지언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지명은 천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요, 지례는 지상의 제도와 법도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면 지언이야말로 궁극의 지식으로서 지인(知人)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말에 대해 논하다’는 논어(論語)가 된 것임을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P.S. 아, 사진은 벨에포크의 마지막을 장식한 주 무왕의 초상화입니다.